영화 미키 17 후기 — 봉준호 감독 SF, 즐겁게 봤는데 강추는 못하겠는 이유

영화 미키 17 후기

영화 미키 17 후기 — 즐겁게 봤는데 강추는 선뜻 못하겠는 봉준호표 SF

봉준호 감독 신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기대치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미키 17>도 그랬어요. <기생충> 이후 6년 만의 신작이고,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SF라는 조합이 범상치 않았으니까요. 보고 나서 드는 솔직한 감정은 이겁니다. "잘 봤다. 근데 어디 가서 먼저 강추하기는 어렵다." 그 묘한 감정의 정체를 좀 풀어볼게요.

기본 정보

  • 제목: 미키 17 (Mickey 17)
  • 감독: 봉준호
  • 원작: 에드워드 애슈턴 소설 《미키7》
  • 장르: SF, 블랙 코미디, 드라마, 디스토피아
  • 주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 개봉일: 2025년 2월 28일
  • 상영 시간: 137분
  • 제작비: 약 1억 1,800만 달러
  • 기획: 브래드 피트 외

제7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베를리날레 특별 상영 부문 초청작이기도 합니다.

주연 로버트 패틴슨은 어떤 배우?

로버트 패틴슨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세드릭 디고리로 얼굴을 알리고,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에드워드 컬렌으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국 배우입니다. 1986년생으로 런던 출신이에요.

그런데 그 이미지를 스스로 벗어던지려는 노력이 꽤 인상적인 배우이기도 합니다. <트와일라잇> 이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코스모폴리스>, 아트하우스 공포 영화 <더 라이트하우스> 같은 독립 영화들로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으로 대중적 재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더 배트맨>으로 또 한 번 블록버스터에 안착한 배우죠.

재밌는 건, 본인이 <트와일라잇>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배우라는 점입니다. 인터뷰마다 그 시리즈와 자신이 맞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왔는데, 그만큼 이후 필모그래피를 자기 방식으로 채워온 인상이 있어요. <미키 17>은 그 연장선에서 봉준호라는 감독을 선택한 거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줄거리 요약

마카롱 가게가 망하면서 거액의 빚을 진 미키(로버트 패틴슨).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한 게 '익스펜더블(Expendable)' 지원입니다.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니플하임 개척단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복제인간 역할이에요.

4년의 우주 항해 끝에 얼음행성에 도착하고, 17번의 죽음과 재프린팅을 반복한 미키 17. 그러던 중 얼음행성의 생명체 크리퍼와 조우한 뒤 죽을 위기에서 살아 돌아왔더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한 행성에 익스펜더블은 한 명만 허용되는 규정상,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상황. 이 '멀티플'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주요 등장인물

미키 반스 17·18 (로버트 패틴슨) — 같은 배우가 두 명의 미키를 동시에 연기하는 구도인데, 같은 기억과 신체에서 출발했지만 미묘하게 다른 성격으로 분화된 두 인물을 패틴슨이 꽤 재밌게 소화합니다. 17은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반면, 18은 좀 더 직선적이고 충동적인 쪽이에요.

나샤 배릿지 (나오미 애키) — 미키를 늘 지켜온 여자친구. 능동적이고 강단 있는 캐릭터로 단순한 조연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케네스 마셜 (마크 러팔로) — 이 영화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캐릭터. 광적인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어딘지 현실 정치인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라 개봉 당시 꽤 이슈가 됐죠. 마크 러팔로 특유의 과장된 연기가 이 캐릭터랑 묘하게 잘 맞아떨어집니다.

일파 마샬 (토니 콜렛) — 케네스의 파트너로, 광기의 리더십 뒤에서 실제로 판을 움직이는 인물.

티모 (스티븐 연) — 미키의 친구이자 마카롱 가게 공동 창업자. 스티븐 연이 이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묘하게 재밌습니다.

시청 후기 — 좋았던 것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충분히 몰입된다

봉준호 감독 신작이라는 타이틀과 복제인간이라는 소재가 조합되면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영화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생기는데, 막상 보면 그렇게까지 난해하지 않습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는 꽤 명확하게 전달되고, 137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시계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집중력이 유지됩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 치고 오락적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편에 속한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의외였습니다.

복제인간 소재 하나로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단순히 "복제인간의 비애"를 다루는 영화가 아닙니다. 식민지 개척의 도의적 문제, 생명의 가치와 계급, 종교적 광기, 사회 시스템의 폭력까지 복제인간이라는 소재 하나에 여러 겹의 이야기를 얹는 방식이 인상적이에요. 각각의 레이어가 따로따로 떠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서사 안에서 자연스럽게 엮입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장기가 여기서도 발휘됩니다.

크리퍼가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징그러운 건지 귀여운 건지 헷갈리는 외계 생명체 크리퍼가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처음엔 그냥 SF 영화의 몬스터 소재인가 싶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크리퍼의 존재가 영화 전체 주제와 연결되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적당히 징그럽고 적당히 친근한 그 묘한 디자인도 기억에 남아요.

OST가 독특하게 낯설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계속 낯설게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한국 음악 감독이 작업한 거더라고요. 할리우드 SF 영화에서 기대하게 되는 전형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아니라, 어딘지 한국 영화의 감수성이 섞인 음악이 이 영화의 분위기와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낯선데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그 불편함이 오히려 영화의 이물감과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마크 러팔로 캐릭터가 주는 불쾌한 현실감

케네스 마셜 캐릭터가 왜 개봉 당시 이슈가 됐는지 보고 나서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광기의 포퓰리스트 정치인 캐릭터인데, 그 불편함이 SF 세계관 안에 있어서 좀 더 직설적으로 다가옵니다. 풍자의 강도가 세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 이 캐릭터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청 후기 — 아쉬웠던 것들

후반부 전개가 너무 급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중반까지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들이 적당한 속도로 쌓여가는데, 후반부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마치 부스터를 단 것처럼 속도가 갑자기 올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캐릭터들이 갑자기 붕 뜨는 느낌이 생기고, 쌓아온 맥락들이 급하게 소화되는 인상입니다. 잘려나간 장면이 많은 건지, 원작 소설의 분량을 다 담기엔 무리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갑작스러움이 꽤 신경 쓰입니다.

너무 많은 걸 담으려다 각각이 얕아진다

복제인간의 정체성 문제, 식민지 착취 서사, 종교 광신 비판, 정치 포퓰리즘 풍자, 로맨스까지 하나의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가 너무 방대합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흥미롭긴 한데, 어느 하나도 충분히 깊게 파고드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넓게 펼쳤지만 깊이가 아쉬운 타입입니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컷이 없다

봉준호 감독 영화라면 몇 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기 마련인데, <미키 17>은 보고 나서 특별히 강렬하게 남는 장면이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톤이라 그런지, 배경 세계관에 힘은 많이 줬는데 임팩트 있는 단독 컷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엔딩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진다

후반부 급전개 끝에 맞이하는 엔딩이 "이걸로 끝인가?" 싶은 허무함을 줍니다. 영화가 쌓아온 주제적 무게에 비해 마무리가 어딘지 싱겁게 느껴지는데, 이게 의도된 여운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너무 많이 담으려다 빠져나온 출구 선택인지 판단하기가 애매합니다.

블랙 코미디로서의 날은 예상보다 서지 않는다

사전에 블랙 코미디 영화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 방향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코미디보다 사회 비판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기본 설정 자체가 꽤 어둡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장르 기대치를 조정하고 보는 게 좋습니다.

결론: 어떻게 봐야 할 영화인가

"즐겁게 봤다"와 "강추하기는 어렵다"가 동시에 성립하는 영화입니다. 시간이 정말 잘 갔고, 보는 동안 집중력이 깨지지 않았으며, 봉준호 감독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분명히 보입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감상이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됩니다. 너무 많은 걸 본 것 같은 포화 상태 느낌이랄까요.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 더 좋게 보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솔직히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딥하지 않은 마음으로 팝콘 무비처럼 즐길 수 있는 SF 영화가 나왔다는 점은 충분히 좋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영화 안에서 "죽는 게 어떤 기분이야"라는 대사가 자주 나오는데, 뭔가 멋진 말을 적고 싶었는데 막상 적으려니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게 이 영화의 여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점: 3.7 / 5.0

함께 보면 좋은 작품: <기생충> (봉준호 전작), <더 문> (복제인간 소재 SF 비교작), <설국열차> (봉준호표 디스토피아 사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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