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매지너리 후기 — 블룸하우스의 가성비 공포, 인형 공포에 너무 큰 자신감이 문제였다

영화 이매지너리 후기

영화 이매지너리 후기 — 블룸하우스의 가성비 공포, 인형 공포에 너무 큰 자신감이 문제였다

티빙에 올라온 영화를 봤습니다. 블룸하우스 공포 영화라는 이름을 믿고 틀었는데,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블룸하우스가 감을 잃었다"였습니다. 정확히는, 감을 잃었다기보다 의도적으로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전한 길이 공포 영화에서 가장 피해야 할 선택이라는 걸 이 영화가 다시 한번 증명해줬습니다.

기본 정보

  • 제목: 이매지너리 (IMAGINARY)
  • 감독: 제프 와드로
  •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 주연: 드완다 와이즈, 톰 페인, 태겐 번즈, 파이퍼 브라운, 베로니카 팰콘
  • 개봉일: 2024년 8월 28일
  • 상영 시간: 104분
  • 제작비: 1,300만 달러
  • 제작: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지금 어떤 상황인가

공포 영화 팬이라면 블룸하우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로 공포 영화 판도를 바꾸고, <인시디어스>, <겟 아웃>, <어스>, <할로윈> 시리즈, <더 퍼지> 시리즈 등 저예산으로 장르의 한계를 넘는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공포 영화 제작사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저예산 고효율이 블룸하우스의 공식이었는데, 그게 강점이 되려면 저예산 안에서 아이디어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겟 아웃>이 그랬고, <메간>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방향성이 흔들리는 느낌입니다. <파이브 나이츠 앳 프레디's>가 흥행하고 나서인지, 아이들 겨냥 저수위 공포 영화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어요. 이 영화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

새로 이사한 집 지하실에서 낡은 곰인형을 발견한 어린 앨리스. 아이는 인형에게 '천시'라는 이름을 붙이고 영혼의 단짝이 됩니다. 그런데 천시에 과몰입한 앨리스가 이상한 게임 리스트를 따라 기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결국 집 깊숙이 숨겨진 파란 문을 열게 됩니다.

새엄마 제시카(드완다 와이즈)는 앨리스의 행동을 걱정하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쫓기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이 집과 인형에 얽힌 과거가 자신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등장인물

제시카 (드완다 와이즈) — 재혼으로 새 가족이 된 엄마.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모든 비밀 열쇠를 쥔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이 없다는 설정이 핵심인데, 그 설정이 작동하는 방식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앨리스 (파이퍼 브라운) — 인형 천시와 영혼의 단짝이 된 아이. 공포 영화에서 아이 캐릭터가 이상 행동을 하는 건 익숙한 공식인데, 그 공식을 새롭게 비트는 게 없어요.

천시 — 이 영화의 핵심 소재이자 가장 아쉬운 부분. 인형이 공포의 중심이 되려면 존재감이 있어야 하는데, 천시는 그걸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애나벨이나 처키처럼 기억에 남는 인형 빌런이 되기엔 설계 자체가 아쉬웠어요.

시청 후기 — 그나마 있었던 것들

소재 자체의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상상의 친구라는 소재는 분명히 공포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어린 시절 상상의 친구가 실제 존재했다면, 그리고 그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면, 동심 파괴형 공포로서 충분히 작동할 수 있는 소재예요. 소재 선택 자체를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후반부 세트 연출은 나름 볼거리가 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상상의 세계 공간 연출은 나름 공들인 티가 납니다. 돈이 거기 들어간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세트 하나가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처럼 느껴졌어요. 거기서 보이는 시각적 요소들은 평범한 수준이긴 해도 104분 중 가장 볼 만한 구간입니다.

재혼 가족의 갈등이라는 설정은 현실적이다

불우한 환경, 재혼, 아이와의 유대 등 현실적인 가족 서사를 배경으로 깔려 있는 건 공포 장르에서 감정적 맥락을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그 시도 자체는 맞는 방향인데, 서사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서 공포가 시작됐을 때 감정이입이 어렵습니다.

10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짧다

별로인 영화도 짧으면 덜 힘듭니다. 이 영화의 유일하게 감사한 부분은 104분이라는 점이에요. 더 길었다면 더 힘들었을 겁니다.

시청 후기 — 별로였던 것들

점프 스케어 몇 번으로 날로 먹으려 한다

이 영화의 공포 연출 전략은 단순합니다. 조용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키우는 점프 스케어를 몇 번 터뜨리고, 그 사이는 별 게 없습니다.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 관성적인 점프 스케어에만 의존하는 구성이에요. 그것도 귀 찢어질 법한 정도의 점프 스케어이면서 정작 무서움보다 짜증이 더 앞섭니다.

인형 공포에 너무 큰 자신감을 보였다

애나벨 이후 블룸하우스가 인형 공포 장르에 꾸준히 손을 대고 있는데, 인형 하나가 공포의 중심이 되려면 그 인형이 기억에 남아야 합니다. 처키가, 애나벨이, 메간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어요. 천시는 그게 없습니다. 분장도 싼티가 나고, 괴물인지 귀신인지 모를 비주얼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냅다 색칠 놀이로 비밀을 푸는 전개

중반부에 색칠 놀이를 하면서 하나씩 비밀을 풀어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게 공포 영화에서 진지하게 전개되는 장면으로 나오는데, 진지하게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의도는 이해하는데 성인 관객 입장에서는 너무 유치하게 느껴졌어요.

어린 시절 기억 회복이 납득이 안 된다

주인공 제시카가 갑자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는 전개가 핵심 반전인데, 그 회복의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기억을 억눌렀던 이유도, 그게 갑자기 열리는 트리거도 설득력이 약해서 반전이 충격으로 오지 않고 그냥 "아 그렇구나" 정도로 지나갑니다.

엔딩의 화합이 어처구니없다

엔딩에서 보여주는 해결 방식과 화합의 방향이 공포 영화의 결말로는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진정한 엄마 되기 프로젝트"였다면, 그걸 공포 영화 안에서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공포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어중간한 마무리였습니다.

결론: 블룸하우스, 초기 폼으로 돌아와줘

블룸하우스가 세운 업적 자체는 여전히 박수칠 만합니다. <겟 아웃> 하나만으로도 공포 영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최근 흐름을 보면 SNS 화제성과 가성비만을 노리는 안전빵 영화들이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저예산 공포라는 공식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작동하는 겁니다. 아이디어 없이 저예산만 남으면 그냥 별로인 공포 영화가 됩니다.

상상의 친구 소재를 제대로 살린 어른용 공포 영화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학교 괴담처럼, 잊혀진 어린 시절 상상의 존재들이 복수하러 돌아온다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면 분명히 달랐을 거예요. 그게 가성비의 한계인지, 아니면 타겟층을 아이들로 잡은 선택의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이 영화는 그 가능성을 다 날렸습니다.

평점: 1.2 / 5.0

블룸하우스가 제대로 만든 공포를 원한다면: <겟 아웃>, <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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