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 후기 —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미뤘던 영화, 보고 나서 오래 남은 이유

영화 아무도 모른다 후기

영화 아무도 모른다 후기 —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미뤘던 영화

넷플릭스로 봤습니다. 너무 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계속 피했던 영화입니다. 개봉은 2004년이고, 한국에선 2005년과 2017년 재개봉을 거쳤는데, 그 내내 멀리했다가 이제야 봤습니다. 보고 나서 오래 남았습니다. 잔잔한데 무거웠고, 직접적이지 않은데 오래갔습니다.

기본 정보

  • 제목: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 誰も知らない)
  •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장르: 드라마, 가족
  • 주연: 야기라 유야 (아키라), YOU (엄마 케이코) 외
  • 개봉일: 2004년 일본 / 한국 2005년 4월 1일, 2017년 2월 8일 재개봉
  • 상영 시간: 140분
  • 원작: 1988년 일본 도쿄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이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아무도 모른다>는 그의 4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이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2018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브로커>(2022) 등 가족과 인간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품들로 꾸준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감독입니다. 한국 배우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이 출연한 <브로커>로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됐죠.

<아무도 모른다>는 실제 사건이 원작입니다. 1988년 도쿄 스가모에서 일어난 아동 방치 사건, 엄마가 아이 넷을 아파트에 두고 사라진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실제 사건보다 영화가 훨씬 인간적으로 각색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고레에다 감독이 어느 지점에서 각색 방향을 잡았는지를 이해하면 그 선택이 납득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로 장남 아키라를 연기한 야기라 유야는 당시 열네 살의 나이로 칸 영화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어요.

줄거리 요약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쪽지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사라진 엄마. 열두 살 장남 아키라, 여동생 쿄코, 남동생 시게루, 그리고 막내 유키까지 네 명의 아이들이 남겨집니다. 아이들은 각자 아버지가 다릅니다. 그래서 아파트 주인에게도, 주변에게도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키라는 동생들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지만, 열두 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영화는 이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그저 따라갑니다. 극적인 사건보다 시간의 흐름, 그 흐름 속 아이들의 변화가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주요 등장인물

아키라 (야기라 유야) — 이 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열두 살짜리가 가장이 되어야 하는 상황. 겉으로는 성숙해 보이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데, 그 억눌린 감정이 가끔 새어나오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장면들입니다. 또래처럼 놀고 싶고 학교도 다니고 싶은 그냥 어린이가 잠깐 모습을 드러낼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케이코 (YOU) — 엄마. 단순히 나쁜 엄마가 아니라 철없는 엄마로 그려집니다. 분명 장난감도 사주고 선물도 하고 나름대로 신경을 썼던 사람인데, 그 다정함이 오히려 더 야속합니다. 왜 그렇게 다정한 모습으로 그렸는지, 보면서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쿄코 (키타우라 아유) — 아키라와 함께 가사를 도맡는 여동생.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아이로,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마의 물건을 지키려 합니다. 이 캐릭터가 있어서 엄마를 완전히 미워할 수 없게 됩니다.

사키 (칸 하나에) — 아키라의 동네 친구. 이지메를 당하고 정서적으로 고립된 인물로, 후쿠시마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서로의 고립을 잠시 채워줍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공기를 가져다주는 캐릭터입니다.

시청 후기 — 오래 남은 것들

잔잔한데 무겁다

직접적인 폭력이나 학대 장면이 없습니다. 방치가 주는 공포는 피가 나거나 소리가 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의 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아무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됩니다. 그 잔잔함이 오히려 더 무겁게 들어옵니다. 1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장남이 잠깐 어린이가 되는 순간

아키라가 동생들을 챙기고, 엄마 역할을 하고, 어른인 척 버티다가 잠깐 그냥 열두 살로 돌아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공원에서 노는 장면, 친구와 함께 있는 장면. 그 짧은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기뻐야 하는 장면인데 가슴이 철렁하고, 그 아이다움이 반가운데 야속한 이중적인 감정이 동시에 왔어요.

아무도 모른다는 건 아무도 몰라서가 아니다

편의점 직원이 폐기 음식을 몰래 챙겨주고, 집주인은 뭔가를 눈치채면서도 흐린 눈을 합니다. 아무도 모른 게 아니에요. 알면서도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게 바로 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엄마를 단순히 나쁜 인간으로 그리지 않은 선택

이 영화가 더 불편하고 오래 남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가 완전한 악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정하게 웃고, 선물을 사주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방치를 합니다. 그게 더 야속하고 복잡합니다. 아이들이 기억하고 찾는 엄마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를 미워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게 만드는 연출이었습니다.

야기라 유야의 연기

칸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이 왜 나왔는지 보면 압니다. 열네 살 배우가 감정을 억누른 채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을 이렇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과장이 없고, 어디서도 연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시청 후기 — 보기 어려운 것들

140분은 분명히 길다

잔잔하고 천천히 흐르는 영화라서 집중이 흔들리는 구간이 있습니다. 극적인 사건이 없는 대신 시간의 무게가 쌓이는 방식이라, 어떤 분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단번에 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실제 사건과의 괴리

실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은 영화보다 훨씬 처참했습니다. 영화가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는 이유입니다. 그 점을 알고 보면 영화 속 아이들이 오히려 너무 건강해 보이는 장면들이 거리감을 줄 수 있어요.

구조에 개입하는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다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입니다. 분명히 눈치채는 어른들이 있는데, 아무도 제대로 개입하지 않아요. 그게 현실이라는 걸 알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 기다림이 계속 배신당합니다.

엔딩이 주는 여운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결말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생각이 계속 이어져요. 영화 속 아이들이 마지막에 엄마의 편지를 받고 다시 희망을 품었을지, 아니면 이미 포기했을지. 그 질문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강한 부분이기도 하고, 보고 나서 무거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론: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미뤘던 영화가 맞습니다. 그리고 봐야 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못났다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영화인데, 그게 특별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무서운 겁니다. 눈앞에 있어도 모른 척 하고, 알아도 나서지 않는 평범한 어른들의 이야기입니다.

악취 나는 보석들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방치된 채로도 서로를 의지하며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참 야속했습니다. 그래도 나아가는 모습을 담았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

평점: 4.2 / 5.0

비슷한 결의 작품: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브로커> (한국 배우들과 함께한 고레에다 감독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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