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큼은 아니었는데, 넘어가는 순간 바로 돋보이기 시작했다
초중반까지는 소문으로 들리는 만큼은 아니구나 싶었다. 공포적인 부분이 생각보다 엄청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라 후폭풍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기분이었달까. 근데 살짝 넘어가는 순간부터 바로 돋보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만이 주장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메시지와 함께 호러 피날레의 쾌감도가 상당히 높다.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호러 엔터쇼 같았던 영화. 할리우드의 여성 상품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잘 만들어낸 영화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약간의 루즈함은 분명히 있었지만 전체적인 만족도가 높은, 강렬한 엔터쇼를 보고 온 것 같은 영화였다.
영화 서브스턴스(2024) 기본 정보
- 감독: 코랄리 파르자
- 장르: 바디 호러, 블랙 코미디, 스릴러, 사회고발
- 출연: 데미 무어, 마거릿 퀄리, 데니스 퀘이드
- 개봉일: 2024년 12월 11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141분
- 제작비: 1,750만 달러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해고를 당하고,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그녀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거릿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인 각각 7일씩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 각자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두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 (데미 무어)
이 영화가 소문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이유 중 하나가 데미 무어의 연기다. 아름다운 또 다른 나를 서브스턴스로 얻었지만 오히려 더 피폐해지고 망가지고,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아직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은 단순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부분을 넘어선 이야기 같아서 많이 기억에 남았다. 데미 무어라는 배우를 이 역할에 캐스팅한 선택 자체가 설정에 이입을 훨씬 맛깔나게 해줬다.
수 (마거릿 퀄리)
서브스턴스로 탄생한 젊고 완벽한 또 다른 나. 마거릿 퀄리도 이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대립 관계가 형성되고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이 영화의 핵심 동력이었다. 의상이 진짜 파격 그 자체인데 말 그대로 겨우 가리는 수준이라 좀 많이 당황했던 건 사실이지만.
하비 (데니스 퀘이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엘리자베스를 해고하는 프로듀서. 외모 산업의 잔인한 상품화 논리를 체현하는 인물인데, 데니스 퀘이드가 이 역할을 얼마나 불쾌하게 잘 소화했는지가 화면에서 느껴진다. 등장할 때마다 짜증이 나는 캐릭터라는 게 오히려 칭찬이다.
좋았던 점들
아름다움에 대한 메시지를 호러로 풀어낸 방식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지만 이 영화는 그걸 '또 다른 나'라는 설정으로 풀어낸 게 달랐다. 서로 기억이나 행동을 공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 묘하게 대립 관계가 형성되고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구조가 계속 긴장감을 불어넣어 줬다. 오로지 상품화로만 비춰지지 않고 아름다움을 위한 선택과 자멸,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것들을 골고루 보여주면서 흥미를 계속 돋운 점이 좋았다.
완벽했던 엔딩 시퀀스
조금 난해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너무나도 완벽한 엔딩 시퀀스였다. 쇼와 같았던 이 장면이 영화 전체가 말하려 한 것들을 한 번에 쏟아내면서 마무리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보고 나서 한참 머릿속에 남는 엔딩이었고,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여배우의 캐스팅이 설정에 더해준 이입감
데미 무어와 마거릿 퀄리라는 조합이 이 설정을 훨씬 맛깔나게 이입하게 해줬다. 실제 할리우드에서 외모와 나이로 평가받아온 배우들이 이 역할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를 훨씬 강렬하게 만든다. 각자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는 표현이 딱 맞는 캐스팅이었다.
칸 각본상이 납득되는 외모 산업 풍자의 완성도
그저 사랑받고 싶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늙은 미래를 부정하고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질투하는 모습들을 이렇게 자극적으로 보여준 각본이 칸 각본상을 받은 게 납득이 된다. 흔한 외모 지상주의 풍자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뇌절 혹은 기괴함의 끝판왕이었는데, 그 방향성만큼은 정말 독했다.
아쉬웠던 점들
초중반의 다소 루즈한 호흡
후폭풍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초중반이 생각보다 많이 천천히 다가온다. 소문으로 들리는 만큼 엄청난 공포가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긴가민가한 구간이 꽤 이어진다. 141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는데 대부분 이 초중반에 몰려있다. 조금 더 빠르게 끌어당겼다면 어땠을까 싶은 부분이었다.
기대보다 높았던 선정성 수위
잔인함보다 오히려 선정성에 더 놀랐다. 의상이 진짜 파격 그 자체인데 말 그대로 겨우 가리는 수준이라 꽤 많이 당황했다. 영화의 메시지와 연결되는 의도적인 선택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사전 정보 없이 봤다면 꽤 당황스러운 수위다.
기대했던 것만큼 전율이 돋지는 않았다
소문이 워낙 자자했던 영화라 기대치가 높았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전율이 돋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물론 후반부의 호러 피날레와 엔딩은 충분히 강렬했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긴장감의 총량은 소문보다 낮게 느껴졌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영화라는 것도 맞다.
엔딩 시퀀스의 난해함
완벽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조금 난해하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면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객도 분명히 있을 것 같고, 그 난해함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를 갈라놓는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더럽지만 냉정한 외모 경쟁의 엔터쇼, 강렬한 뒷맛이 남는다
'서브스턴스'는 할리우드 여성 상품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독하게 풀어낸 영화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강렬한 작품이었다. 계속해서 들리는 pump it up의 들썩임과 함께 진짜 말 그대로 강렬한 엔터쇼를 보고 온 것 같다. 약간의 루즈함은 분명히 있었지만 호러 피날레의 쾌감과 엔딩 시퀀스의 완성도가 그 아쉬움을 충분히 덮어준다. 기대했던 것만큼 전율이 돋지는 않았어도, 보고 나서 오래 남는 영화라는 건 분명하다.
결론 및 최종 평점
더럽고 독하고 기괴한, 외모 경쟁 산업을 향한 가장 강렬한 엔터쇼.
평점: 3.7 / 5.0
- 추천하는 분: 바디 호러 장르를 즐기는 분, 할리우드 외모 산업 풍자에 관심 있는 분, 데미 무어와 마거릿 퀄리의 열연이 궁금한 분
- 비추천하는 분: 높은 선정성 수위에 민감한 분, 빠른 호흡의 공포 영화를 원하는 분, 난해한 엔딩이 불편한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