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이라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의 소식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고통의 잔상과도 같습니다. 특히 가해자가 반성 없이 살아가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슬픔보다는 해방감이나 인과응보에 가까운 복잡한 형태를 띠곤 합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학폭 가해자의 사망 소식을 듣고 "업보를 돌려받은 것"이라 표현했다가 주변의 비난을 샀다는 한 피해자의 사연이 올라와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죄를 덮어주어야 한다는 유교적 관념과,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고인에 대한 예우와 피해자의 회복되지 못한 상처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과 도덕적 잣대의 간극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 "못된 짓 하더니 결국..." 학폭 피해자가 마주한 가해자의 죽음
글쓴이는 과거 심각한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어느 날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에 대해 "못된 짓 하더니 업보를 돌려받은 것"이라는 솔직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업보라는 표현은 너무하지 않느냐", "고인의 부모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며 글쓴이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습니다.
글쓴이는 가해자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제삼자들이 고인의 편에 서서 도덕성을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피해자의 시간은 여전히 그 지옥 같던 순간에 멈춰있는데, 가해자의 죽음이라는 면죄부 하나로 모든 가해 사실이 미화되는 현실에 분노를 느낀 것입니다.
이 사연은 단순한 감정싸움을 넘어,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고통보다 가해자의 죽음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죽음의 성역화'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 "죽음이 면죄부는 아니다" vs "인륜 저버린 발언" 팽팽한 대립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글쓴이를 옹호하는 측은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마라"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가해자의 죽음은 그저 생물학적인 마침표일 뿐,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가해자가 살아생전 진심 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면, 피해자가 인과응보를 거론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감정의 배출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반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강조합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생명이 사라진 지점에서는 비난을 멈추는 것이 최소한의 인륜이라는 논리입니다. 특히 유가족의 슬픔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업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의 인식이 과거에 비해 피해자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며 덮어주던 분위기였으나, 최근에는 학폭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면서 "사필귀정"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 결론: 진정한 위로는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 때 시작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지만, 모든 것을 씻어주지는 않습니다. 학폭 피해자가 가해자의 죽음을 보며 '업보'를 떠올리는 것은 인성 결여가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받았던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믿고 싶은 심리적 방어 기제에 가깝습니다. 제삼자가 피해자의 감정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훈계하는 행위야말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이차 가해'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유가족 면전에서 이를 언급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적인 공간이나 익명의 커뮤니티에서조차 감정을 억누르라고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고인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보다, 살아남은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의 분노를 온전히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결국 '업보'라는 단어는 가해자가 남긴 악취가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반증하는 거울입니다. 죽음 뒤의 평안을 논하기 전에, 살아있는 동안 타인의 삶을 짓밟았던 이들의 책임을 먼저 묻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될 때 비로소 이러한 소모적인 도덕성 논란도 종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학폭 가해자의 죽음 앞에서 '업보'라고 말하는 피해자의 심정을 어떻게 보시나요?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우선일까요, 아니면 피해자의 맺힌 한을 풀어내는 것이 우선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