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2024) 후기 - 300억짜리 독립 영화 같았던,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던 첩보 시대극

300억이 들어간 영화인데, 독립 영화 같았다

상업적인 영화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하얼빈은 뭔가 300억이라는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독립 영화 같았다. 재미, 오락성의 여부를 넘어서 생각지도 못한 잔잔한 톤의 이야기랄까. 국뽕이 차오른다는 노선을 택할 수 있었을 텐데 차갑고 담담하게만 나아가는 영화다. 끝이 정해져 있으니 이전 서사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재미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걸 성공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이런 리뷰를 남기면 매국노 취급을 하시는 분들이 찾아오시는 탓에 좋게 생각해서 별점을 반 점 정도 올릴까 했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연말 거의 유일한 대작이라 응원하는 마음은 있고, 즐거움을 주는 영화가 아닌 건 처음부터 알고 봤지만 '영화적' 재미가 충분했는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영화 하얼빈(2024) 기본 정보

  • 감독: 우민호
  • 장르: 액션, 스릴러, 드라마, 첩보, 시대극
  • 출연: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이동욱, 박훈, 유재명, 릴리 프랭키 외
  • 개봉일: 2024년 12월 24일 (대한민국), 2024년 9월 9일 (제49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 상영 시간: 114분
  • 제작비: 300억 원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의 독립군 전투부터 시작해,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현빈)과 독립군들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내부에서 새어 나간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의 추격이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더해진다. 제49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공식 초청작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 현빈의 하얼빈이 아닌, 조우진의 하얼빈이었다

안중근 (현빈)

이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의외로 안중근의 이야기보다는 주변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다룬 듯한 구성이었다. 배우들 얼굴을 의도적으로 잘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눈에 띄었는데, 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아닌 독립군 인물 그 자체로 보이게 하려는 거라면 이건 엄청나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선택이었다. 현빈이라는 배우를 지우고 안중근을 보이게 만들려는 시도가 느껴졌달까.

김상현 (조우진)

현빈이 아닌 조우진의 하얼빈이었다고 느낄 정도로 연기가 너무 좋았다. 일본어 통역관이자 독립군 동지라는 복잡한 설정을 가진 인물인데, 조우진이 이 캐릭터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가 장면마다 느껴졌다. 연출에서 큰 재미를 못 느낀 상황에서도 조우진의 연기가 멱살 잡고 이끌고 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창섭 (이동욱)

대한의군 부총장으로 등장한다. 안중근이 전쟁 포로를 풀어주는 것에 분노하며 균열을 만드는 인물인데, 이동욱의 연기도 캐릭터를 충분히 살려냈다는 느낌이었다.

공부인 (전여빈)

혼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대한의군 무기 공급원이라는 설정인데, 다른 배우들과 톤이 달라서인지 유독 혼자 어색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었다. 전여빈이라는 배우의 문제라기보다는 캐릭터 설계나 연출 방향이 나머지와 잘 맞지 않은 느낌이랄까.

이토 히로부미 (릴리 프랭키)

잠깐 나오지만 엄청난 포스를 풍겼다. 등장 시간이 길지 않음에도 이토 히로부미라는 인물의 무게감을 충분히 실어냈고, 릴리 프랭키라는 배우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던 점들

한국 영화가 해냈다 싶은 해외 로케이션 영상미

300억의 제작비가 해외 로케이션 비용으로 들어간 듯하다. 그 덕분에 영상미가 상당하다. 배경 활용이 뛰어났고, 왜 아이맥스로 개봉을 추진했는지 알 만한 장면들이 나온다. 이만한 해외 로케이션을 한국 영화가 해냈다는 점 자체는 대단하다 싶었다. 이게 영화의 이야기를 극대화해주었는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화면이 주는 시각적 무게감만큼은 분명히 있었다.

조우진을 필두로 한 배우들의 연기

연출에서 재미를 못 찾은 상황에서도 배우들의 연기가 멱살 잡고 이끌고 갔다. 특히 조우진의 연기는 이게 현빈이 주인공인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릴리 프랭키도 짧은 등장임에도 이토 히로부미의 무게감을 제대로 실어냈고, 전여빈을 제외한 배우들 전반의 연기 수준은 높았다.

배우를 지우고 인물을 보이게 만든 연출 시도

의도적인지 어쩌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배우들 얼굴을 의도적으로 잘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있었다. 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아닌 독립군 인물 그 자체로 보이게 하려는 거라면 이건 엄청나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선택이었다. 현빈이라는 스타를 지우고 안중근을 보이게 하려는 시도, 그게 느껴지는 장면들에서만큼은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이 뭔지 와닿았다.

아쉬웠던 점들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다

이게 가장 큰 단점이다. 지루했지만 몰입감이 있었고, 동시에 뭔가 싹둑 잘려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던 영화랄까. 국뽕이 차오르지 않아서도 아니고, 영화가 느려서도 아니다. 그냥 이미 다 아는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색다른 게 없었다. 이 영화만의 필살기가 없게 느껴진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때깔 좋은 드라마의 압축 극장판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소재를 너무 빠르게 다시 만난 느낌

같은 배급사가 불과 2년 전에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빠르게 같은 소재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미 끝을 아는 이야기에서 더 보여줄 상업 영화적 이야기가 있나 하는 생각이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껴졌고, 그게 보는 내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전여빈 캐릭터의 따로 노는 느낌

다른 배우들과 달리 전여빈만 혼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인이라는 캐릭터 자체의 설정이 나머지 독립군들과 결이 다른 탓인지, 전반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구간이 있었다. 전여빈이라는 배우를 이 캐릭터에 써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었다.

대사가 들렸다 안 들렸다 반복되는 사운드

대부분의 장면에서 대사가 애매하게 잘 들렸다가 안 들렸다가 반복한다. 의도적인 연출인지 기술적인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게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이 있었다. 극적인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으면 감정 전달이 반감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순간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영상미가 이야기를 극대화해주지 못했다

해외 로케이션 영상미가 상당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게 영화의 이야기를 극대화해주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300억의 제작비가 이야기보다 영상에 더 집중된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 영상미는 있지만 그 영상미가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상업 영화로서의 재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응원하지만, 잘 봤다는 말은 못하겠다

하얼빈은 솔직히 리뷰 쓰기 싫은 유형의 영화다. 좋게 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욕먹을 것 같아 괜히 걱정되는 눈치보이는 그런 영화랄까. 근데 이 영화도 결국 상업 영화다. 연말 거의 유일한 대작이라 응원하는 마음은 있고, 배우들의 연기와 해외 로케이션의 스케일은 분명히 인정한다. 다만 영화적 재미가 충분했는가에 대한 답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조우진의 연기 하나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을 것 같다.

결론 및 최종 평점

영상미는 압도적, 조우진의 연기는 최고,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던 첩보 시대극.

평점: 2.9 / 5.0

  • 추천하는 분: 조우진·현빈 배우의 연기를 좋아하는 분, 화려한 해외 로케이션 영상미가 중요한 분, 담담하고 차분한 톤의 시대극을 선호하는 분
  • 비추천하는 분: 국뽕이 차오르는 웅장한 독립운동 영화를 기대하는 분, 상업 영화적 오락성과 긴장감을 원하는 분, 같은 소재의 이야기를 최근에 이미 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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