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피(2000) 후기 - 두 귀를 막고 싶었던, 인생 최악의 괴작 공포 영화

두 눈이 아니라 두 귀를 막고 싶었던 영화

두 눈을 뽑고 싶다는 말은 간혹 하는데, 두 귀를 막고 싶다는 말은 처음 적어보는 것 같다. 최근에 티빙을 통해 감상했는데 이 영화 진짜 무슨 의도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다. 슬래셔가 아니라 그냥 코미디로 이제는 분류가 된 듯하지만, 공포 영화로 홍보를 했다는 게 문제겠지 싶다. 별의 별 영화를 호기심에 많이 봤지만 이처럼 충격적인 영화는 못 본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내 인생 최악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히 말하는데 B급은 완벽한 A급이어야만 훌륭한 B급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건 F등급보다 낮지 않을까. 최근에 0.5점을 준 영화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이제는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점수를 줘야겠다 싶었던 영화다.

영화 하피(2000) 기본 정보

  • 감독: 라호범
  • 각본: 권소연
  • 장르: 공포 (사실상 코미디)
  • 출연: 김래원, 이정현, 김꽃지, 이미지, 김제동
  • 개봉일: 2000년 7월 22일
  • 상영 시간: 86분

단편 공포 영화 하피 제작을 준비 중인 영화 동아리 무비텐 멤버들의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수연(이정현)은 동아리 멤버 현우(김래원)를 좋아하지만 현우는 예림(김꽃지)과 사귀고 있다. 예림은 수연에게 심한 질투를 느끼고 그 감정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공포가 시작된다는 설정이다. 참고로 이 영화로 첫 데뷔를 한 라호범 감독은 이후 메가폰을 전혀 쥐지 못했고, 주연 배우들이 시사회 때 도망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 여기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활동하는 배우들에게 경의를

수연 (이정현)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여고생 주인공이다. 이정현이라는 배우가 이 영화를 찍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뭐가 남아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감독도 다른 배우도 이 작품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는데 이정현은 여기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 (김래원)

씨발이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캐릭터로 유명한 인물이다. 김래원 배우도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살아남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독고다이 줏대 없는 남학생이라는 설정인데 영화 자체가 엉망이다 보니 캐릭터를 평가할 여지가 없었다.

예림 (김꽃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눈길이 갔던 배우다. 엉망인 영화 속에서도 매력적이었던 김꽃지 배우가 의외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가 너무 심각하게 별로여서 그냥 흘러갔지만, 이 배우만큼은 기억에 남았다.

좋았던 점들

김꽃지 배우의 의외로 안정적인 연기

엉망인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눈길이 갔던 존재였다. 이 영화의 퀄리티 안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 김꽃지 배우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른 모든 것들이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그나마 이 배우 덕분에 86분을 버틸 수 있었다.

중간에 삽입된 이정현의 따라 OST

영화 중간에 이정현이 부른 '따라'라는 곡이 삽입되는데 꽤 좋았다. 병맛 넘치는 영화 안에서 갑자기 뮤직비디오처럼 나오는 구성이 어처구니없기는 했지만,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보다 이 뮤직비디오가 더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괴작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컬트적 흥미

이 영화가 어떻게 정식 개봉작이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이게 이 영화를 한 번쯤 보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괴작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가진 공통적인 유일한 장점이랄까. 코드만 맞는다면 의외로 볼만하다는 느낌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쉬웠던 점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황당한 효과음

특수 효과 사운드트랙을 구매했고 돈 쓴 게 아까워서 일단 다 넣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단추가 떨어져 굴러가는데 엔진 소리가 나오고, 농구공이 골대에 부딪히는데 띠요옹 효과음이 나오는 건 예사다. 두 눈이 아니라 두 귀를 막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게 이 효과음들 때문이다. 이게 정식 개봉작이라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몰입을 방해하는 나레이션

애니메이션 향기가 진하게 나는 나레이션이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일일이 설명하고 논평을 내리면서 이래라 저래라 해석한다. 진지한 장면처럼 연출하다가도 분위기를 깨는 내용의 나레이션이 나와 웃음을 유발하는데, 웃기지도 않고 몰입만 방해한다. 이 나레이션이 영화를 더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절반 이상을 날려버린 의미 없는 장면들

뿌연 화면들과 학생들의 문란한 파티 장면으로 영화 절반 이상을 의미 없이 날려버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복수극이랍시고 피를 선보인다. 갑자기 삭발을 하질 않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개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내용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공포가 아예 없는 공포 영화

공포 영화로 홍보했는데 공포를 주는 장면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슬래셔의 클리셰를 따라가지 않으려 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만들어내는 데도 실패했다. 공포로 다가가지 않고 코미디로 들어갔어도 웃기지 않았으니 이건 장르 불명의 영화나 다름없다.

조잡한 편집과 뿌연 화면

당시 일반 UCC 영상도 이것보단 퀄리티가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집이 조잡하다. 뿌연 화면은 마치 하두리 캠으로 찍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고, 장면 전환도 뭔가 어설프게 이어진다. 이게 정식 극장 개봉작이라는 사실이 2025년에 돌아봐도 여전히 놀랍다.

찍으면서 욕 안 하셨냐고 물어보고 싶은 영화

'하피'는 당시 배우들을 모두 모아서 솔직히 찍으면서 욕 안 하셨냐고 물어보고 싶은 영화다. 감독도 다른 배우도 이 작품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살아남은 이정현과 김래원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진다. 코드만 맞는다면 괴작으로서의 컬트적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피하라고 말하고 싶은 영화다.

결론 및 최종 평점

귀를 막고 싶었던 86분, 인생 최악의 괴작. 김꽃지와 이정현의 OST만 건졌다.

평점: 1.2 / 5.0

  • 추천하는 분: 한국 공포 영화 역사상 최악의 괴작이 궁금한 분, 컬트 영화 특유의 병맛 코드를 즐기는 분, 김래원·이정현의 초기 필모그래피가 궁금한 분
  • 비추천하는 분: 제대로 된 공포 영화를 기대하는 분, 황당한 효과음과 나레이션을 견디기 힘든 분, 86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분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