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예고편 보고 실망했다가, 보기 잘했다고 느낀 드라마
솔직히 티저 예고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메인 예고편을 보고 실망감만 쌓여가는 상황에서 그냥 패스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최초의 하이틴 공포 드라마라는 타이틀이 궁금해서 결국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보기 잘했다. 하이틴이라기보다는 무속 신앙이 진하게 녹아든 샤머니즘 호러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고, 3화쯤에서 그 기세가 더 강해지면서 공포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드는 순간들도 있었다.
간만에 고사 시리즈나 여고괴담 같은 공포물을 본 것 같아서 은근 설렜던 걸 보면 아무튼 괜찮게 본 것 같다. '우리 하이틴이에요'를 계속 티내는 부분에서 몰입이 깨질 만한데 본론에 들어가면 바로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 신기한 드라마였달까.
넷플릭스 드라마 기리고(2026) 기본 정보
- 제목: 기리고 (If Wishes Could Kill)
- 장르: 호러, 학원, 오컬트, 스릴러, 추리, 미스터리, 퇴마
- 출연: 전소영, 강미나, 백선호, 현우석, 이효제, 전소니, 노재원 외
- 공개일: 2026년 4월 24일 (넷플릭스)
- 회차: 8부작
- 총 러닝타임: 355분
소원을 이뤄주는 애플리케이션 기리고의 저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고받은 고등학생들이 그 저주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저주를 내리는 앱이라는 설정 자체는 이미 흔한 편이지만, 그 저주의 기원을 파고드는 방식이나 무속 샤머니즘과의 결합이 이 드라마만의 색을 만들어냈다.
등장인물 — 신인 주인공들보다 무당 부부가 더 빛났다
유세아 (전소영)
주인공이지만 아직 신인이라 그런지 풋풋함이 연기에 그대로 남아있다. 발연기는 아니었고 하이틴 공포물의 맛에서 신인 등용문이라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여주와 남주의 케미가 살지 않았던 부분이 아쉬웠고, 두 사람의 활약이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임나리 (강미나)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인물이다. 혼자만의 단독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구간에서 강미나의 연기가 빛을 발했고, 중심을 계속 정말 잘 잡아줬다. 설명 장치로 활용되는 구간이 길게 이어지긴 하는데 납득력이 조금 떨어지는 부분은 아쉬웠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다.
김건우 (백선호)
남주인공인데 저주를 너무 쉽게 빗나가는 설정이 좀 애매했다. 가뿐하게 살아남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긴장감이 반감되는 느낌이 들었다. 풋풋한 연기 자체는 하이틴 호러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강하준 (현우석)
방울과의 매형-처남 케미가 이 드라마의 드문 환기 요소이자 개그 포인트였다. 침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 둘의 티키타카가 잠깐씩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잘 해줬다.
햇살 (전소니) & 방울 (노재원)
이 드라마를 보기 잘했다고 느끼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특별출연임에도 사실상 준주연급 비중을 차지하면서 이야기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두 사람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전소니의 현대적인 여성 무당 캐릭터와 노재원의 허당 같으면서 실제로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의 서늘함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완성시켜줬다. 이 두 사람의 분량에 큰 만족을 하면서 봤기에 신인 주인공들의 활약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 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좋았던 점들
저주 기원을 친절하게 한 회차 이상 풀어낸 각본
기리고라는 앱에 얽힌 저주의 기원을 찾아내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아예 새로 만들어 친절하게 한 회차 이상을 선보인 것에 대해 큰 칭찬을 하고 싶다. 그냥 전형적인 한국식 신파 저주물로 가지 않은 장치였고, 한정적이다 보니 좀 비좁게 몰아치는 서사였지만 강렬해서 충격적이기도 했다. 이 부분이 드라마 전체의 흥미를 유지하게 만드는 핵심이었다.
전소니·노재원 무당 부부의 존재감
앞서도 언급했지만 따로 짚고 싶을 만큼 좋았다. 특별출연인데 이 정도 분량과 비중을 소화하면서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준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가 훨씬 평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샤머니즘 요소를 이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한 방식도 좋았고, 두 사람의 케미도 드라마 전반에 걸쳐 좋은 에너지를 줬다.
회차당 짧은 러닝타임과 가볍게 볼 수 있는 호흡
8부작에 회차당 러닝타임이 짧아서 가볍게 볼 만했다.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구조라 지루하게 늘어지는 구간이 많지 않았고, 본론에 들어가면 바로 흥미로운 요소가 나오는 구성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샤머니즘 공포 연출에 신경을 쓴 흔적
점프 스케어에 의존하지 않고 저주의 분위기와 시각적 연출로 공포를 만들려 한 시도가 보였다. 피는 기대 이상으로 많이 나왔고, 일부 장면에서는 공포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연출에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친절한 샤머니즘 설명과 함께 분위기를 유지한 방식이 나름 잘 작동했다.
아쉬웠던 점들
초반에 박살나는 개연성
예고편에서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를 거의 다 보여준 데다, 남주가 너무 가뿐하게 살아남는 설정부터 개연성이 좀 애매하다. 저주를 쉽게 빗나가는 설정이 반복되면서 긴장감이 약해지는 구간이 있었고, 납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초반부터 쌓이기 시작한다.
중간에 계속 등장하는 개그 타임의 이질감
침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중간에 계속 개그 타임을 넣는 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방울과 하준의 케미는 좋았지만 그 외의 개그 요소들이 공포 분위기를 깨는 순간들이 있었다. 호러 드라마에서 환기 요소는 필요하지만 그 비중 조절이 좀 더 세밀하게 이뤄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
케미가 살지 않은 여주와 남주
하이틴 호러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여주와 남주의 케미가 생각보다 살지 않았다. 비밀 연애 설정임에도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들이 공포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하기보다 그냥 설정 확인 정도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즌2 암시 엔딩의 혼란스러움
쿠키 영상을 포함한 시즌2 암시 방식이 좀 혼란스럽게 보였다. 쉽게 끝나지 않는 저주임을 보여주는 장치라는 건 이해하지만, 그 처리 방식이 명확하지 않아 여러 해석이 가능한 상태로 끝났다. 시즌2가 나온다면 기리고라는 앱 설정 말고 다른 장치가 필요할 텐데, 각본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이는 엔딩이었다.
풋풋하지만 10대는 못 보는 수위의, 괜찮게 본 교복 입은 샤머니즘 호러
'기리고'는 풋풋한 매력의 10대가 주인공이지만 10대는 못 보는 수위의 샤머니즘 호러 드라마다. 개연성 구멍도 있고 여주·남주 케미도 아쉬웠지만, 저주 기원을 친절하게 풀어낸 각본과 전소니·노재원의 존재감이 이 드라마를 무난히 볼 만한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시즌2가 나온다면 더 어렵고 먼 길을 택할 것 같은 암시가 남아있으니, 각본이 잘 따라와 준다면 기대해볼 만하다.
결론 및 최종 평점
예고편 보고 패스할 뻔했는데 보기 잘했다. 전소니·노재원이 이 드라마의 전부였다.
평점: 3.5 / 5.0
- 추천하는 분: 샤머니즘 호러 장르가 궁금한 분, 전소니·노재원 배우의 팬, 가볍게 볼 수 있는 짧은 호러 드라마를 찾는 분
- 비추천하는 분: 탄탄한 개연성과 긴장감 있는 공포를 원하는 분, 하이틴 특유의 풋풋함이 몰입을 방해하는 분, 열린 결말과 시즌제 구조를 싫어하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