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가 생각났다, 아는 맛이 결국 가장 잘 먹힌다는 걸 확인한 영화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스포츠 클리셰를 그대로 이어가는 영화다. 스포츠 영화가 다 그렇지 라는 느낌을 지우기 위해 코미디를 넣었지만 가볍게 보이지는 않게 한 각본이 꽤 영리해 보였다. 보다 보니 슬램덩크가 살짝 생각이 났는데, 흔한 스포츠 만화 공식의 느낌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 만화가 떠오른 건 그만큼 이 영화가 익숙한 공식을 잘 따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아는 맛이 가장 잘 먹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 영화였다.
배구를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경기 연출이 몰입을 계속 지켜줬다. 지든 말든, 결과가 정해져 있든 간에 경기를 보는 맛으로 적당하게 가볍게 보기엔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영화 1승(2024) 기본 정보
- 감독: 신연식
- 장르: 드라마, 스포츠, 코미디
- 출연: 송강호, 박정민, 장윤주 외
- 개봉일: 2024년 12월 4일
- 상영 시간: 107분
지도자 생활 평균 승률 10% 미만의 루저 감독 김우진(송강호)이 해체 직전의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 감독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새 구단주 강정원(박정민)이 1승을 하면 상금 20억을 풀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세우면서 모두가 주목하는 구단이 되지만, 압도적인 연패 행진은 계속된다.
등장인물 — 각자의 포지션이 살아있는 캐릭터들
김우진 (송강호)
초반과 이후가 너무 달라서 각성 서사가 좀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훈련 중에 낚시대나 잡고 있던 인물이 갑자기 팬들에게 일침을 날리고 선수들에게 진심이 되는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편이라 이입이 안 될 수도 있다. 근데 딸의 한마디로 정신을 차리는 장면이나 선수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설정이 후반부에서 빛을 발하는 구조가 나쁘지 않았다.
강정원 (박정민)
돈으로 다 해결하는 듯하면서도 전형적인 재벌 캐릭터가 아니었던 게 이 캐릭터의 묘미다. 처음엔 철없는 구단주 같았는데 시즌이 지속되면서 선수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변화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서 오히려 흥미로웠다. 박정민이 이런 캐릭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소화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달까.
방수지 (장윤주)
젖은 낙엽처럼 20년을 버텨온 후보 선수이자 팀 주장. 장윤주라는 배우를 이 역할에 캐스팅한 게 꽤 잘 어울렸다. 노안이 와서 감독 사인이 안 보이는 40살 주장이라는 설정 자체가 코미디 요소로 잘 작동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벤치에 앉아있으면서도 주장으로서의 역할은 뛰어난 캐릭터 설계가 좋았다.
핑크스톰 선수들
각 캐릭터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대신 각자의 포지션에 대한 장단점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덕분에 영화가 늘어지지 않고 속도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민희의 왕따 서사, 강지숙의 벤치 6년 서사, 오보라의 포지션 변경 등 각 선수들의 변화가 경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이 이 영화의 장점이었다.
좋았던 점들
기대 이상의 배구 경기 연출
배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봐도 집중하게 만든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각 경기마다 나름의 긴장감이 있었고, 선수들의 포지션별 특성을 경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방식이 좋았다. 지든 말든 경기를 보는 맛이 있다는 게 스포츠 영화로서의 기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뜻이다.
신파를 자제하면서 속도감을 살린 각본
사연 팔이를 하지 않은 덕에 구구절절 캐릭터 소개 없이 속도감 있는 경기 일정을 만날 수 있었다. 각성 서사가 좀 급작스러워 보일 수는 있지만, 오히려 그 덕에 영화가 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신파로 빠지지 않으려 자제한 흔적이 보이는데,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맞았다.
스포츠 팬 문화에 올바른 소리를 한 부분
이 영화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장면이다. 스포츠 팬들이 선수들을 향해 도를 넘는 비난을 하는 문화를 짚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 약간 신파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메시지를 담백하게 전달했다. 어느 나라든 스포츠 팬 문화에서 가끔 당황스러울 정도로 폭력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걸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짚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선택이었다.
각자의 포지션으로 보여주는 선수 서사
캐릭터들의 사연보다 배구 선수로서의 포지션과 장단점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한 게 영리했다. 이게 스포츠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드라마적 감정도 놓치지 않는 균형을 만들어줬다. 실제 배구라는 스포츠에서 필요한 땀과 눈물을 쉽게 소비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러웠다.
아쉬웠던 점들
너무 급작스러운 캐릭터들의 변화
사연을 구구절절 소개하지 않다 보니 캐릭터들의 성장과 변화가 지나치게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다. 선수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속도로 한마음 한뜻이 되고, 감독도 너무 빠르게 진심으로 바뀐다. 그 계기 자체가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다.
송강호 캐릭터의 초반과 이후 온도 차
초반에 완전히 의욕을 잃은 인물로 설정된 감독이 변화하는 과정이 조금 급작스럽다. 물론 딸의 일침이 계기가 되는 건 이해하지만, 그 변화가 너무 드라마틱하게 일어나면서 '이제 와서 갑자기' 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있어서 그냥 넘어가게 되는 건데, 다른 배우였다면 더 아쉽게 느껴졌을 것 같다.
익숙한 클리셰에서 오는 전율의 부재
흔한 스포츠 만화 공식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클리셰에서 오는 전율이나 짜릿함이 없다. 어떤 선수가 각성할지, 어떤 경기에서 이길지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아는 맛이 잘 먹히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만의 특별한 한 방이 없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친절한 캐릭터 소개
사연을 구구절절 풀지 않는 선택이 속도감을 살려준 반면, 일부 캐릭터들에 대한 이해가 경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쌓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선수들 간의 갈등 구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전개되는 부분에서 조금 따라가기 어려웠다. 불친절한 영화라면 불친절하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적당하게 볼 만한 아는 맛, 그게 이 영화의 전부이자 장점
'1승'은 매우 평범한 스포츠 영화다. 클리셰도 뻔하고, 결말도 예상 가능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단점이면서 동시에 장점이다. 배구를 잘 몰라도 집중하게 만드는 경기 연출, 신파를 자제하면서 속도감을 유지한 각본, 스포츠 팬 문화에 올바른 소리를 한 장면들이 이 영화를 적당하게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실제 배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화면에서 느껴졌고, 그걸로 충분했다.
결론 및 최종 평점
뻔하지만 속도감 있고, 신파 없이 따뜻한 아는 맛의 스포츠 영화.
평점: 3.3 / 5.0
- 추천하는 분: 배구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생긴 분, 신파 없는 깔끔한 스포츠 성장물을 원하는 분, 송강호·박정민의 케미가 궁금한 분
- 비추천하는 분: 스포츠 영화 클리셰에 지친 분, 캐릭터 서사를 깊게 파고드는 영화를 원하는 분, 예측 불가능한 반전을 기대하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