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하나로 모든 게 뒤집혔다
영화가 끝이 안 난다고 생각하면서 봤다. 뮤지컬 넘버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고 그냥 화려하고 멋진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봤는데, 16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분명 화려하고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지만 흥미가 전혀 생기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는데, 엔딩 후반부 하이라이트 하나로 모든 걸 만회하지 않았나 싶다. 감흥이 없었던 부분들도 다시 떠오를 정도로 엔딩이 정말 좋았다.
참 신기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벅차올랐던 후반 하이라이트 장면 하나로 영화에 대한 인상 자체가 달라지니 말이다. 보고 나서 바로 '와 엔딩 미쳤다'와 동시에 파트2만을 기대하게 됐다는 것만으로, 파트1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영화는 목표를 달성한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위키드(2024) 기본 정보
- 감독: 존 추
- 장르: 판타지, 뮤지컬, 액션, 어드벤처
- 출연: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단 베일리, 양자경, 제프 골드블룸 외
- 개봉일: 2024년 11월 20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160분
- 제작비: 1억 4,500만 달러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과 뮤지컬 위키드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로, 2막으로 이루어진 뮤지컬의 1막 부분이 영화화됐다. 참고로 국내 개봉판에서는 파트1이라는 부제목이 빠져있어서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끝 부분에서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지 못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등장인물 — 엘파바 서사 하나로 끝까지 집중했다
엘파바 (신시아 에리보)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 유일한 인물이었다. 누가 봐도 정상인 인물이 비정상으로 비춰지는 차별의 시선이 되게 가슴 아프게 전달됐고, 악당의 탄생을 알리는 방식이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라 더 흥미롭게 지켜봤다. 신시아 에리보의 존재감과 연기력이 이 영화의 160분을 버티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글린다 (아리아나 그란데)
아리아나 그란데라는 가수가 이 역할에 얼마나 잘 맞는지는 캐릭터 자체를 보면 납득이 간다. 다만 엘파바에 비해 글린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에게 관심이 덜 가다 보니 그쪽 서사는 상대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글린다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더 재밌게 봤을 것 같다.
마담 모리블 (양자경) & 마법사 (제프 골드블룸)
양자경과 제프 골드블룸이라는 조합이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에메랄드 시티 진입 이후 본격적으로 살아난다. 특히 에메랄드 성으로 진입한 이후 장면들이 상당히 근사했는데, 이 두 배우의 존재감이 그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려 줬다.
좋았던 점들
역대급이었던 엔딩 후반부 하이라이트
이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유가 여기 있다. 중간에 정줄을 놓을 뻔했다가 엔딩 하이라이트 하나로 정자세로 고쳐 앉게 만들었다. 단번에 만회할 정도로 강렬했고, 이 장면 하나 때문에 파트2가 필사적으로 기대된다. 벅차올랐던 감정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남아있었다.
악당의 탄생 서사가 주는 흥미로운 시선
이 이야기 자체를 잘 몰랐던 덕에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라는 구조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누가 봐도 정상인 인물이 세상의 시선에 의해 비정상으로 비춰지는 차별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고, 가슴 아프게 전달됐다. 왜 위키드라는 이야기가 큰 사랑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에메랄드 시티 진입 이후의 압도적인 스케일
에메랄드 성으로 진입한 이후 모든 장면이 상당히 근사했다. 이를 갈고 영화화를 했구나 라는 게 스케일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1억 4,500만 달러라는 제작비가 어디에 쓰였는지가 이 구간에서 확실하게 보였다.
엘파바 서사에 대한 처음부터 끝까지의 집중력
다른 인물들에게는 흥미가 덜했는데, 엘파바 서사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했다. 그 덕분에 160분이 지루해서 길게 느껴진 게 아니라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흥미가 상대적으로 덜 생겼다는 느낌이었다. 엘파바의 이야기에 이입이 됐던 것만큼은 이 영화가 제대로 해낸 부분이다.
아쉬웠던 점들
취향과 맞지 않은 뮤지컬 넘버들
귀를 사로잡는 넘버가 별로 없었던 게 160분이 길게 느껴진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음악이 내 취향을 사로잡지 못하니까 중간중간에 흥미를 잃는 구간이 생겼다. 뮤지컬 위키드를 원래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또 다를 것 같지만, 넘버를 처음 접한 입장에서는 귀에 꽂히는 곡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160분이라는 부담스러운 러닝타임
비주얼로만 승부보려 한 느낌이 있는데 160분 자체를 다 감당하기엔 좀 과했다. 파트1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러닝타임은 부담스럽다. 파트2도 비슷한 시간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축된 느낌의 캐릭터 감정 서사
160분이나 되는 시간인데도 각 인물들의 감정 서사가 많이 압축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채 넘어가는 구간들이 있었다. 뮤지컬이 원래 이런 흐름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로서는 감정의 깊이가 더 필요한 장면들이 있었다.
국내판 자막의 MZ스러운 번역
자막이 너무 MZ스러운 느낌으로 번역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다수 있었고, 번역 선택이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더빙판이 초호화 캐스팅으로 호평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는데, 더빙으로 봤다면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파트2만을 기다리게 만든 영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위키드'는 영화를 온전하게 즐겼다기보다는 엔딩의 짜릿함 하나로 전체 인상이 달라진 영화였다. 160분이 길게 느껴지고, 취향에 맞는 넘버도 많지 않았지만 엘파바 서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했고, 후반 하이라이트에서 벅차올랐다. 파트1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영화가 파트2를 필사적으로 기대하게 만들었다면, 그것 하나로 목표를 달성한 거 아닐까. 다만 파트2 러닝타임은 좀 조정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결론 및 최종 평점
160분이 길었지만, 엔딩 하나로 모든 게 뒤집혔다. 파트2가 필사적으로 기다려진다.
평점: 3.3 / 5.0
- 추천하는 분: 위키드 뮤지컬을 원래 좋아했던 분, 엘파바의 악당 탄생 서사가 궁금한 분, 압도적인 스케일의 뮤지컬 영화를 극장에서 즐기고 싶은 분
- 비추천하는 분: 160분의 긴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운 분, 귀에 꽂히는 뮤지컬 넘버를 기대하는 분, 파트1 구조에 답답함을 느끼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