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을 모르고 봤는데, 비틀쥬스가 나오는 순간 그냥 좋아졌다
1편을 제대로 보지 않고 보았다. 36년 만의 속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으니 전편을 모르면 이해가 안 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막상 보면 지난 서사를 대충 눈치채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 물론 1편을 다 알고 보면 추억을 회상하는 재미가 더해지겠지만, 몰라도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비틀쥬스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흥미를 잃을 뻔했다. 초중반부에 깔려있는 루즈함이 꽤 길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다 중후반부부터 비틀쥬스가 활약을 몰아치기 시작하면서 '그래,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거였어' 하는 짜릿함이 왔다. 뮤지컬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 말 그대로 기괴하고 괴짜스러운 장면들. 유치한 이야기에 어느 순간 완전히 심취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신기한 영화였다.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2024) 기본 정보
- 감독: 팀 버튼
- 장르: 판타지, 호러 코미디
- 출연: 마이클 키튼, 위노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제나 오르테가, 저스틴 서로, 모니카 벨루치, 윌렘 대포 외
- 개봉일: 2024년 9월 4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105분
- 제작비: 1억 달러
유령과 대화하는 영매로 유명세를 타게 된 리디아(위노나 라이더)와 그런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10대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 할아버지 찰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족들은 시골 마을에 내려간다. 방황하던 아스트리드는 함정에 빠져 저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고, 딸을 구하기 위해 리디아는 저세상 슈퍼스타 비틀쥬스(마이클 키튼)를 소환한다. 36년 만에 다시 풀려난 비틀쥬스가 이루지 못한 결혼을 조건으로 내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등장인물 — 돌아온 얼굴들과 새로운 얼굴들
비틀쥬스 (마이클 키튼)
이 영화의 존재 이유다. 비틀쥬스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흥미를 잃을 뻔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캐릭터가 화면에 나오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의 온도 차가 크다. 사후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리디아를 잊지 못하고 있던 그가 36년 만에 다시 풀려나는 구조인데, 중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활약을 몰아치는 장면들은 마이클 키튼이라는 배우가 이 캐릭터를 얼마나 오래 품어온 사람인지가 느껴지는 연기였다.
리디아 (위노나 라이더)
1편에서의 유령을 보는 능력을 직업으로 삼아 TV 미스터리 쇼를 진행하는 인물로 돌아왔다. 돌아온 위노나 라이더의 반가움 자체는 분명히 있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 개개인의 활약이 약간 애매하게 쏠려있다 보니, 리디아의 서사가 충분히 살아난다는 느낌보다는 전체 구조 안에서 역할을 하는 정도에 머문다는 느낌이 든다.
아스트리드 (제나 오르테가)
팀 버튼의 새로운 페르소나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영화가 제나 오르테가 위주로 흘러가는 느낌이 강하고, 실제로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편이다.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10대 반항아 캐릭터인데, 제나 오르테가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팀 버튼의 세계관과 묘하게 잘 맞는다.
델로레스 (모니카 벨루치)
비틀쥬스의 전 아내이자 이번 영화의 빌런. 비틀쥬스조차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뺌할 정도로 위험한 유령으로 묘사된다. 그 비틀쥬스가 꺼릴 정도라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고, 모니카 벨루치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캐릭터와 잘 맞았다.
울프 잭슨 (윌렘 대포)
생전에 B급 영화 스타로 활동하다 촬영 도중 사고로 사망한 후 저승 경찰청 형사로 일하는 인물이다. 배우 연기하는 컨셉으로 일하는 설정이 이 영화의 병맛스러운 세계관과 딱 맞아 떨어진다. 윌렘 대포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즐기고 있다는 게 화면을 통해 느껴진다.
좋았던 점들
비틀쥬스가 활약하는 순간들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볼거리다. 중후반부부터 비틀쥬스가 본격적으로 이리저리 사고를 치고, 누군가를 괴롭히고, 쫓아다니는 장면들이 몰아치는데 그 순간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그렇고, 뜬금없다고 할 수 있는 기괴하고 괴짜스러운 장면들이 난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유치한 이야기에 어느 순간 완전히 심취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이다.
1편을 몰라도 입장이 가능한 구조
36년 만의 속편이지만, 1편을 보지 않은 사람도 어느 정도 눈치로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 지난 서사를 직접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파악이 된다. 이번 영화로 비틀쥬스를 처음 접하더라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충분히 들어가 있다는 점은 속편으로서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팀 버튼의 색이 살아있다
역시 팀 버튼이구나 하는 생각이 보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본인만의 세계가 너무 뚜렷해서 그 외의 모든 부분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역설적으로 그 뚜렷함 안에 스며드는 순간이 온다. 팀 버튼 감독의 강한 색을 오랜만에 제대로 느끼는 영화라는 점에서, 팬이라면 반가움이 더욱 클 것 같다.
병맛스러운 세계관이 주는 독특한 재미
워낙 병맛스러운 걸 좋아하는 입장에서 미소 지으면서 본 영화가 맞다. 슈링커들로 채워진 사후 콜센터, 생전 B급 스타가 저승 형사로 일하는 설정, 비틀쥬스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들까지. 이 세계관의 논리가 너무 자체적으로 뚜렷해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안에 스며들게 된다.
아쉬웠던 점들
비틀쥬스가 나오지 않는 장면의 루즈함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비틀쥬스가 화면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온도 차가 너무 크다. 초중반부 내내 깔려있는 루즈함이 상당히 길게 느껴지고, 비틀쥬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까지 흥미를 잃을 뻔 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줄이거나 채웠다면 영화 전체의 완성도가 달라졌을 것 같다.
후반부 스토리가 너무 평범하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 라인이 생각보다 평범하게 흘러간다. 12세 관람가답게 유치찬란하고 특별한 전개 없이 이어지는 느낌이 강하고, 엔딩도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감이 있다. 비틀쥬스라는 캐릭터의 에너지와 팀 버튼의 세계관이 주는 흥미로움에 비해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가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개개인의 활약이 애매하게 쏠린다
돌아온 기존 인물들에 대한 반가움은 있지만, 각 캐릭터의 활약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제나 오르테가 위주로 흘러가는 구조가 강하다 보니, 위노나 라이더나 캐서린 오하라 같은 기존 인물들의 서사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
미국식 유머 코드에 대한 호불호
이야기 자체는 유치찬란하고 미국식 유머 코드가 짙게 깔려있다. 병맛스러운 걸 즐기는 입장이라면 미소 지으면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냥 추천하기가 어렵다. 한국 흥행이 잘 될 것 같지 않다는 느낌도 이 부분에서 온다.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어필 포인트를 콕 집어내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엔딩 마무리가 아쉽다
결말을 너무 급하게 처리한 느낌이 남는다. 이야기가 쌓아온 것들에 비해 마무리가 허무하게 끝난다는 인상이 강하고, 후속작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두는 방식도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방식이라 신선함이 없었다. 엔딩이 조금만 더 공을 들였다면 전체 만족도가 달라졌을 것 같다.
비틀쥬스만 보면 된다, 나머지는 솔직히 필요 없었다
비틀쥬스 비틀쥬스를 보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 딱 하나 있다. 비틀쥬스가 이리저리 사고를 치고 누군가를 괴롭히고 쫓아다니는 모습을 마냥 더 보고 싶다. 그냥 그거면 된다. 나머지는 솔직히 크게 필요 없었다.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으니까.
1편을 완전하게 복습하고 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처음 비틀쥬스를 접하는 입장에서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있고, 팀 버튼의 색을 오랜만에 제대로 느끼는 경험 자체는 반가웠다. 다만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취향을 많이 탈 것 같아서 선뜻 그렇다고 하기가 어렵다. 딱 적당히 볼 만했던 영화. 비틀쥬스를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았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확실한 감상이다.
결론 및 최종 평점
루즈함과 흥미로움이 공존하지만, 비틀쥬스가 활약하는 순간만큼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점: 3.2 / 5.0
- 추천하는 분: 팀 버튼의 세계관을 좋아하는 분, 1편 비틀쥬스의 팬이라 돌아온 캐릭터들이 반가운 분, 병맛스럽고 기괴한 유머 코드를 즐기는 분
- 비추천하는 분: 탄탄한 스토리와 개연성 있는 전개를 원하는 분, 미국식 유머 코드에 익숙하지 않은 분, 1편을 보지 않아 시리즈 팬심이 없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