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늘 찾아다니던 착한 영화를 만나고 왔다
영화는 늘 아름답고 현실은 더 거지같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무해하고 청정한 영화를 만나는 게 그렇게 좋을 때가 있다. 나는 늘 스스로 착한 영화를 찾아다닌다고 말하는데, 그 영화를 만나고 온 것 같다. 여름처럼 푸르고 가을처럼 수수했던 이야기. 수어와 표정, 감정으로만 전달하는 사랑의 설렘이자 몽글한 이야기의 영화였다.
원작은 안 봤어도 모든 설정을 다 알고 본 영화라서 반전처럼 보일 포인트 등의 재미는 전혀 없었지만, 마냥 보기에 좋았던 정말 깨끗했던 영화였다. 영화관이 너무 추워서 조금 떨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두 배우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추운 줄도 모르고 봤을 정도로 두 인물의 감정 교류에 몰입했다. 그냥 영화를 보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영화 청설(2024) 기본 정보
- 감독: 조선호
- 장르: 청춘, 힐링, 로맨스, 드라마
- 출연: 홍경, 노윤서, 김민주 외
- 개봉일: 2024년 11월 6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109분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 고민하던 용준(홍경)이 도시락 배달 알바를 하다가 수어를 사용하는 여름(노윤서)과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더 잘 듣기보다 더 잘 보고 느끼려 노력하는 용준과, 동생 가을(김민주)의 올림픽 출전을 위해 묵묵히 뒷받침하며 살아온 여름의 사랑 이야기다.
등장인물 — 기대 이상이었던 세 배우의 눈빛
이용준 (홍경)
여리여리해 보이는 소년미가 이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졌다. 첫눈에 반한 여름에게 서툴지만 솔직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과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표현됐고, 수어를 배워가며 여름과 가까워지려는 과정이 흐뭇하게 보기 좋았다. 홍경이라는 배우가 가진 따뜻한 눈빛이 이 캐릭터를 완성시켜줬다.
서여름 (노윤서)
똑부러진 듯한 이미지와 캐릭터가 잘 맞았다. 말없이 표정과 수어로만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역할인데, 노윤서의 눈빛이 그 감정을 충분히 실어줬다. 동생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인물의 무게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용준과의 감정 교류 장면에서 설레었다기보다 흐뭇하게 보기 좋은 감정이 들었다.
서가을 (김민주)
의외의 표정 연기가 기대 이상이었다. 수영선수 캐릭터인데 말 대신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들에서 존재감이 확실히 살아났다. 언니 여름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따뜻함이 영화 전체의 온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좋았던 점들
대사 없이 꽉 찬, 수어와 표정으로만 이루어진 감정 교류
러닝타임의 80퍼센트는 대사 없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왜일까 그 어떤 영화보다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는 것처럼 몰입도가 높았고, 풍경 소리와 배경 음악만으로 귀를 자극하는 방식이 이 영화를 다른 영화들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 영화를 맑다는 말 말고 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 배우의 눈빛이 만들어낸 설렘과 흐뭇함
설레었다기보다는 그냥 흐뭇하게 보기 좋았던 영화였다. 홍경의 소년미와 노윤서의 따뜻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감정 교류가 과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이 급하지 않게 잔잔하게 흘러가서, 그 결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꿈만 같지 않았던 현실적인 장면의 삽입
수영장 사용을 두고 갈등이 생기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로 알고 있는 장면이다. 어릴 적에 TV에 자주 나오던 어머니와 선수가 바로 생각났다. 이 장면이 영화 안에 들어가서 너무 좋았다. 꿈만 같은 영화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흘러갔을 텐데, 이 장면 하나가 영화를 완전한 동화로 만들지 않아줬다.
청각 장애 이외의 이야기도 담아낸 영화
청각 장애를 둘러싼 이야기를 제외하고도 나 자신의 꿈 그리고 부양의 의미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을 주는 영화였다. 세상이 이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해줬고, 지나치게 착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니까 영화지 싶기도 한 따뜻한 이야기였다.
아쉬웠던 점들
후반 감정선의 급작스러운 전개
후반 감정선이 좀 급작스럽게 느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후반에 들어서면서 조금 서두르는 느낌이 들었고, 그 결을 따라가지 못하면 루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간이 있었다.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조금 다른 온도로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달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지나치게 착한 세계관
영화가 지나치게 착해 보일 수 있다.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기도 하다. 선의와 동정은 정말 한 끗 차이인데, 영화는 그 선의가 당연하게 통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이걸 모순이지만 그러니까 영화지 싶다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현실감각이 강한 분들에게는 조금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의 부족한 대화
첫눈에 반해버린 서로가 생각보다 대화를 하지 않아서 사소한 오해가 쌓이는 구조인데, 그 오해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과한 착함이 아니라 선입견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두 사람이 부럽더라, 오래 꺼내볼 것 같은 영화
'청설'은 기억 속에 오래 저장해 두고 두고 꺼내 생각해볼 것만 같은 영화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감정선만이 있어서 결을 따라가지 못하면 루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사 없이도 꽉 찬 영화라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준 영화였다. 원작을 굳이 뒤늦게 찾아봐 비교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청설은 홍경과 노윤서 그리고 김민주다.
결론 및 최종 평점
대사 없이 꽉 찬, 보는 시간 내내 행복했던 청정 1급수 같은 무해한 영화.
평점: 3.8 / 5.0
- 추천하는 분: 무해하고 따뜻한 로맨스 영화를 찾는 분, 홍경·노윤서의 감정 연기가 궁금한 분, 잔잔하게 흘러가는 힐링 영화를 원하는 분
- 비추천하는 분: 빠른 전개와 긴장감 있는 서사를 원하는 분,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 대사 없는 장면이 많은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