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괴도(2024) 후기 — 주온 감독의 신작, VR 소재는 괜히 가져다 쓴 평범한 일본 공포영화

영화 기괴도(2024) 후기

티빙에 올라왔길래 봤는데, 극장 안 간 건 잘한 선택이었다

티빙에 올라왔길래 냉큼 봤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든 첫 번째 생각은 딱 하나였다. 극장에서 안 본 건 잘한 선택이었다.

주온의 감독 시미즈 다카시. 이 타이틀 하나로 여전히 버텨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면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VR과 메타버스라는 소재를 선택했는데, 굳이 이걸 가져다 쓴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봐도 될 만큼 소재가 영화 안에서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 결국 마을을 둘러싼 괴담과 심령 스팟 이야기로 흘러가는, 감독이 이전에 연이어 선보였던 작품들의 연장선에 불과한 영화로 마무리됐다.

영화 기괴도(2024) 기본 정보

  • 감독: 시미즈 다카시
  • 장르: 공포, 스릴러, SF
  • 출연: 니시하타 다이고, 야마모토 미즈키, 토우마 아미 외
  • 개봉일: 2024년 6월 12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109분

영매사의 입지가 강력한 외딴 섬. 천재 뇌과학자 토모히코(니시하타 다이고)는 팀원들과 현실 세계와 똑같은 가상공간을 구성하는 VR 연구, 이른바 신세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프로그램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시스템 에러와 버그가 빈번해지기 시작하고, 마을 주민들의 불가사의한 죽음이 이어진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속에서 공포가 펼쳐지는 이야기다.

등장인물 — 남자 주인공을 위한 영화라는 게 너무 티 난다

카타오카 토모히코 (니시하타 다이고)

주인공이자 이 영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과학으로 증명된 사실 외에는 믿지 않는 천재 뇌과학자라는 설정인데, 이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초반부에 꽤 긴 시간을 투자한다. 문제는 그 시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공허한 장면들이 초반을 길게 채우고, 정작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흥미를 잡아두지 못한다.

소노다 타마키 (야마모토 미즈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섬에 방문하는 인물이다. 마을의 괴담과 연결되는 서사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채 소비되는 느낌이 강하다.

카네시로 린 (토우마 아미)

수수께끼의 소녀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일본 공포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유형의 캐릭터 포지션인데, 이 캐릭터 역시 괴담의 겉핥기 수준에서 활용되다 마무리된다.

좋았던 점들

괴담 자체의 잔혹함은 나름 있었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을을 둘러싼 괴담 자체가 꽤나 잔혹한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고, 공포를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미세하게나마 남아있다. 급격한 피해자들의 증가나 괴담의 실체가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약간의 흥미가 생기는 구간이 있었다.

이전 작품보다는 나은 편이다

감독의 직전 대표작이었던 작품과 비교하면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아이돌 홍보 영화나 다름없었던 이전 작품에 비하면 그래도 공포 영화로서의 최소한의 형태는 갖추고 있다. 기준이 낮은 칭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공포에 집중하려 했다는 흔적은 보인다.

점프 스케어의 빈도는 높은 편이다

이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기법들로 이루어진 공포 연출이긴 하지만, 이전 작들보다 공포 장면이 생각보다 자주 튀어나온다. 특색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순간적인 놀람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이전 작들보다는 체감 빈도가 높다는 점에서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는 할 수 있다.

아쉬웠던 점들

VR 소재를 가져다 쓴 이유가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메타버스와 VR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는데, 이게 영화 안에서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 마을 괴담에 가까워질수록 그냥 평범한 일본 공포 영화로 변해가고, VR 설정이 괴담과 연결되는 방식도 어색하다. 차라리 VR 없이 순수하게 그녀의 저주와 수수께끼를 푸는 방향으로만 갔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사이버틱함을 억지로 끼워 넣어서 오글거림만 추가된 느낌이다.

초반 서사가 너무 흥미 없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의 초반부가 지루하다. 남자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쓸데없이 긴 공허함에 시간을 투자하는데, 그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기괴한 VR 설정을 제대로 살려서 연구팀의 이상한 행동들을 흥미롭게 보여줬다면 달랐겠지만, 그런 부분이 없다 보니 초반이 너무 평평하게 흘러간다.

괴담마저 겉핥기 수준으로 소비된다

마을 괴담이라는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그걸 제대로 파고들지 않는다. 괴담의 잔혹함을 인간의 무서움으로 깊게 다뤘다면 칭찬할 수 있었겠지만, 겉핥기 수준으로 캐릭터를 소비하는 데 그치고 만다. VR과 괴담이 연결되는 구조도 억지스럽고, 두 소재 모두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끝난다.

일본 공포 영화 특유의 감성적인 교훈 엔딩

VR 소재답게 공포적인 부분을 나름의 방식으로 연출하다가, 끝에 가서 일본 공포 영화 특유의 감성적인 교훈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 마무리가 씁쓸함이 아니라 '이게 뭘까'라는 마음을 주면서 끝난다. 공포 영화의 결말로서 설득력이 부족하고, 억지로 감동을 얹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주온 감독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온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기대치를 올려놓고, 그 기대치가 이 영화를 더 아쉽게 만든다. 감독이 자주 선보이던 기법들의 자가복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보다는 익숙한 방식에 계속 기대는 모습이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거의 매년 신작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것이겠지만, 이 스타일의 반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의문이 든다.

주온 감독 타이틀은 이제 좀 내려놓았으면

시미즈 다카시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것이다. 이제는 주온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저 멀리 보내주고, 새로운 무언가의 감독으로 소개가 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 그러려면 본인도 자가복제 스타일의 공포 연출에서 벗어나는 도전이 필요하다.

기괴도는 한국 공포 영화만큼이나 늘 실망을 주는 일본 공포 영화의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VR이라는 소재를 굳이 가져다 썼지만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마을 괴담이라는 익숙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특색 없이 평범하게 끝났다. 티빙에서 봐서 다행이었다는 말이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솔직한 감상이다. 언젠가 포텐이 다시 터지는 공포를 선보이길 기대해보지만, 지금 이 흐름으로는 그 기대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결론 및 최종 평점

VR 소재는 겉돌고, 마을 괴담은 겉핥기. 주온 감독의 자가복제가 이번에도 반복됐다.

평점: 1.4 / 5.0

  • 추천하는 분: 일본 공포 영화라면 무조건 챙겨보는 분,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팬으로 신작이 궁금한 분, 점프 스케어 빈도가 높은 공포 영화를 찾는 분
  • 비추천하는 분: VR과 메타버스 소재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공포를 기대하는 분, 탄탄한 서사와 개연성 있는 공포 영화를 원하는 분, 주온의 감동을 다시 기대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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