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만 보고 기대했다가, 톤을 보고 흔들렸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약간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태권도·검도·유도 도합 9단 무도 유단자가 전자발찌 대상자를 밀착 감시하는 공무원이 된다는 설정 자체는 솔깃하다. 소재만 놓고 보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영화다. 근데 제작 발표 당시부터 예고편까지 계속 따라오는 그 애매한 느낌, '도대체 이 영화 톤이 뭐야'라는 의문이 본편에서 역시나 확인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실망스러운 영화다. 클리셰 범벅으로 일단 비벼보자 하는 통쾌함만이 해답인 줄 알고 직진하는 영화인데, 그 과정의 매력이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사라진다. 클라이막스에서 '아이디어가 진짜 이게 전부였나' 싶을 정도로 허탈한 순간이 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지, 극장에서 봤다면 한숨이 더 깊었을 것 같다.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2024) 기본 정보
- 감독: 김주환
- 장르: 액션, 코미디, 수사, 범죄, 버디
- 출연: 김우빈, 김성균, 박지열, 이현걸 외
- 공개일: 2024년 9월 13일 (넷플릭스)
- 상영 시간: 108분
태권도·검도·유도 각 3단, 합산 9단의 무도 유단자 이정도(김우빈). 치킨집 배달 일을 하면서 힘든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량한 청년이다. 어느 날 우연히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의 공격을 받던 무도실무관을 구해주게 되고, 보호관찰관 김선민(김성균)의 제안으로 전자발찌 대상자를 24시간 밀착 감시하는 무도실무관으로 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동 성범죄를 중심으로 한 범죄 조직과 맞닥뜨리게 되는 이야기다.
등장인물 — 많긴 한데, 잘 활용됐는지는 모르겠다
이정도 (김우빈)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이자 한계다. 188cm의 피지컬에 무술 9단, 잘생긴 외모에 착한 인성, 게임 실력까지. 작중 사기 캐릭터라는 건 분명하다. 김우빈이라는 배우가 액션을 소화하는 방식이나 타격감은 충분히 볼 만하다. 다만 캐릭터가 너무 완벽하게 설정되어 있다 보니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고,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 버프가 과하게 쌓이면서 긴장감이 사라진다.
김선민 (김성균)
보호관찰관으로 이정도를 무도실무관에 끌어들이는 인물이다. 김성균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활용이 너무 아쉬웠다. 중반부에 크게 다쳐 병원 신세를 지면서 사실상 후반부에는 빠지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이정도와의 버디 케미가 충분히 쌓이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나버린다.
강기중 (이현걸)
이 영화의 최종 보스. 187cm에 97kg의 거구로, 이정도와 맞먹는 신체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테이저건을 맞고도 전극을 뜯어내는 장면 등 괴물 같은 설정이 붙어있다. 빌런으로서의 존재감 자체는 있는 편이다.
조민조 (박지열)
이정도를 무도실무관에 추천한 인물로, 후반부 결정적인 장면에서 뇌사 판정을 받고 사망한다. 영화 안에서 감정적인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인데, 오히려 굳이 이 에피소드가 필요했는지 의문이 드는 삽입이기도 했다.
좋았던 점들
김우빈의 액션과 타격감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볼거리다. 태권도·검도·유도를 기반으로 한 격투 장면들은 타격감이 살아있고, 김우빈이라는 배우가 액션을 소화하는 방식도 믿을 만하다. 마네킹이나 장독 같은 주변 물건을 무기로 활용하는 장면들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액션으로는 이미 타격감을 증명한 감독이라는 평가가 헛말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무도실무관이라는 소재 자체의 흥미로움
전자발찌 대상자를 24시간 밀착 감시하는 무도실무관이라는 직업 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다. 이런 직업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그들이 하는 일의 성격, 법과 현실 사이에서 겪는 아슬한 상황들. 소재만으로는 드라마 시리즈 한 편을 거뜬히 채울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소재를 발굴했다는 것 자체는 분명히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새로운 얼굴들이 주는 소소한 재미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고, 그중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꽤 보인다. 이정도의 친구들인 시나리오 작가 강주석, 드론 조종에 능한 안정호, 별명이 지렁이인 김차현 등 조연 캐릭터들이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드론으로 강기중의 눈에 상처를 내는 장면처럼 조연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역할을 하는 구조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아쉬웠던 점들
각본이 소재를 따라가지 못했다
김우빈 배우는 열심히 주먹을 날리는데, 영화의 각본이 그 에너지를 따라가지 못한다. 갑자기 하늘에서 굴러온 재능 있는 청년, 세상 착한 상사, 무능한 경찰, 알 수 없는 법의 편, 그리고 잘난 친구들까지. 전개 자체가 너무 뻔하다. 주인공이 점차 사명감을 느끼는 성장 서사마저 별로처럼 느껴진 이유는 영화가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안전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우빈 캐릭터에만 집중된 구조
이 영화는 사실상 하나의 멋진 캐릭터 탄생만을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배치해놓은 구조다. 법은 무능하고, 경찰은 따라오지 못하고, 상사는 쓰러지고, 결국 이정도 혼자 다 해결하는 흐름이 반복된다. 김성균과의 버디 케미가 쌓일 시간도 없이 중반에 한 명이 빠져버리고, 그 빈자리를 채울 무언가가 없다 보니 후반부가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클라이막스의 아이디어 한계
후반부 클라이막스에서 '아이디어가 진짜 이게 전부였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 통쾌함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통쾌하다고 해서 영화가 재밌었다면 모두가 이런 이야기만 만들었겠지.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이 영화는 조금 잊은 것 같다. 초반과 클라이막스의 온도 차가 너무 크고, 그 간극이 찝찝함으로 남는다.
드라마였으면 더 좋았을 소재를 영화로 억지로 우겨넣은 느낌
무도실무관이라는 직업의 위험과 활약을 제대로 다루려면 영화 한 편보다 드라마 시리즈가 훨씬 맞는 포맷이었을 것 같다. 영화로 만들다 보니 더 많은 것을 빠르게 우겨넣어야 했고, 그 결과 정돈이 잘 안 된 느낌이 계속 따라온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됐을 동료의 에피소드, 충분히 살리지 못한 조연들의 이야기가 전부 이 포맷 선택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사적 제재의 선을 넘나들면서도 그 무게를 다루지 않는다
범죄 영화에서 이제 흔한 소재가 된 사적 제재의 아슬한 선. 이 영화는 그 선을 넘나들면서도 그 무게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무도실무관들 밖에는 정의로운 사람이 없다고 세뇌를 하고 봐야 납득이 되는 구조다. DP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소재인데, 그 방향을 선택하지 않고 액션 판타지 쪽으로만 달려간 게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쁜 놈 때려잡았으니 목적은 다했다, 근데 그게 전부다
무도실무관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그들이 밤낮으로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김우빈이라는 배우가 액션 캐릭터를 잘 소화한다는 것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영화가 가져다준 것들이다.
그런데 위기 속에서 정작 남는 건 '김우빈 캐릭터 멋있게 잘 뽑았지'라는 생각뿐이다. 단순히 오락으로만 풀어낸 것치고는 소재가 너무 아까운 영화였고, 공장형 영화를 찍어내는 넷플릭스에게는 최적의 콘텐츠일 수 있으나 이 소재는 그렇게 쉽게 소비해도 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더 어둡고, 더 진지하고, 더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야기였는데.
통쾌함이 찝찝함을 다 감춰주진 못했다.
결론 및 최종 평점
소재는 좋고 김우빈은 열심히 했지만, 각본과 포맷 선택이 발목을 잡은 영화.
평점: 1.8 / 5.0
- 추천하는 분: 김우빈의 액션이 보고 싶은 분, 무겁지 않게 가볍게 볼 버디 액션이 필요한 분, 넷플릭스에서 틀어놓고 볼 오락 영화를 찾는 분
- 비추천하는 분: 탄탄한 각본과 개연성 있는 전개를 기대하는 분, 소재를 진지하게 다룬 사회고발형 영화를 원하는 분, 버디 케미와 감정 서사를 중시하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