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소재를 가지고, 이게 최선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화가 많이 났다. 그동안 최악의 한국 공포 영화를 꽤 많이 만나봤다고 생각했는데, 늘봄가든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케이스다. 거의 거저먹는 소재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이게 최선이었냐는 한숨이 연신 나오는 영화였다.
3대 흉가라는 마케팅 자체가 가짜라고 봐도 될 수준이다. 곤지암처럼 폐건물 체험 형식을 따라간 것도 아니고, 흉가의 괴담에 영화만의 서사를 붙이는 도전적인 방향을 선택했는데, 그 도전이 완전히 실패로 끝난 영화다. 연출, 각본 모두 소름 끼칠 정도로 충격적이고, 메시지도 감동도 공포도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끝났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영화 늘봄가든(2024) 기본 정보
- 감독: 구태진
- 장르: 공포, 스릴러
- 출연: 조윤희, 김주령, 정인겸, 허동원 외
- 개봉일: 2024년 8월 21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90분
대한민국 3대 흉가 중 하나로 알려진 늘봄가든.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시댁의 만행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소희(조윤희)는 아이마저 잃고, 남편의 유일한 유산인 시골 저택 늘봄가든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을 방문한 언니 혜란(김주령)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들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등장인물 — 고군분투하는 주연, 발목 잡는 조연
소희 (조윤희)
이 영화를 거의 혼자 끌고 가는 인물이다. 연기가 좋았다고는 솔직히 말하기 어렵고, 중간에 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괴한 장면들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조건이 이 정도인 상황에서 혼자 극을 이끌어가려 했다는 것 자체가 눈물겹다. 공포 영화에서 주연 배우가 이 정도의 고군분투를 해야 한다면, 그건 배우보다 영화의 문제다.
혜란 (김주령)
소희의 언니로 소희를 돕기 위해 늘봄가든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소희와 합을 맞춰야 하는 중요한 역할인데, 전반적으로 두 사람의 호흡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는 느낌이 남는다.
인겸 (정인겸)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 종을 울리고 땅을 파 무언가를 묻는 퇴마사로 등장한다. 이 캐릭터의 설정 자체는 흥미로울 수 있는 요소가 있었는데, 영화 안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소비되는 느낌이 강하다.
불량 서클 일진 무리
소희와 합을 맞춰야 하는 중요한 장면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인데, 이 친구들의 연기가 너무 부족해서 장면 자체를 무너뜨린다. 공포 영화에서 예산이 부족한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연기까지 이 수준이면 영화 전체의 완성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좋았던 점들
늘봄가든이라는 소재 자체의 가능성
영화가 너무 별로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소재의 가능성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늘봄가든이라는 흉가에 영화만의 서사를 붙이겠다는 시도 자체는 도전적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심령 스팟에 독자적인 이야기를 구축하겠다는 기획 방향은 나쁘지 않은 출발점이었다. 이 소재를 제대로 된 연출과 각본으로 다뤘다면 어떤 영화가 됐을지 상상하면 더 안타까울 뿐이다.
반전 포인트를 초반에 심어둔 구조
초반에 눈썰미만 있다면 영화의 반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장치가 심어져 있다. 반전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를 초반부터 흘려두는 구조 자체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이 반전에 좀 더 힘을 주고 납득이 가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구축했다면 이 영화의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공포를 주기 위한 장치를 심으려 한 노력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포를 주기 위한 여러 장치를 심어두고 노력했다는 흔적 자체는 남아있다. 물론 그 노력이 신들린 연출 기법에 의해 죄다 헛웃음으로 바뀌어버렸지만, 적어도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 노력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결과가 나빴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다.
아쉬웠던 점들
연출과 각본이 둘 다 최악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이야기를 잘 지어내지 못하겠다면 연출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이 영화는 둘 다 무너졌다. 시대를 역행한다는 표현이 딱 맞는 연출 기법은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고, 공포를 주기 위한 장치들이 긴장감 대신 헛웃음을 만들어낸다. 각본도 개연성을 떠나 이야기 자체를 납득 가게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3대 흉가 마케팅이 가짜다
포스터부터 가짜라고 할 수 있다. 3대 흉가라는 마케팅으로 기대를 심어놓고, 막상 영화 안에서는 그 기대에 응하는 게 거의 없다. 곤지암처럼 유명 공포를 대놓고 따라가는 방식이라도 선택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한 채 마케팅만 거창하게 해놓은 꼴이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그 모든 게 나오지 않는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다.
민감한 소재를 이런 방식으로 소비했다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이 수준의 공포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져다 쓴다는 게 어이없다. 너네가 지금 무슨 소재를 함부로 다루는지 알기는 하냐고 말하고 싶었다. 소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었다면 이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좋은 소재들만 낭비하면서 메시지도, 감동도, 공포도 하나 남기지 못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의 반복
참신함이 느껴지는 장면이 없다. 대부분의 장면들이 어디서 봤던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인용한 것 같은 구성이 반복된다. 좋지 않은 방법으로 여러 영화를 따라한 흔적이 곳곳에 있는데, 그 따라함이 원작보다 훨씬 낮은 완성도로 구현되어서 더 아쉽다. 독자적인 이야기를 구축하겠다는 방향을 선택했으면서 정작 독자적인 장면은 없었다.
불량 서클 조연들의 부족한 연기
주연이 혼자 극을 끌고 가는 상황에서, 중요한 장면들에 등장하는 조연들의 연기가 너무 부족하다. 공포 영화에서 예산이 부족한 건 감안할 수 있지만, 이 수준의 연기가 겹쳐지면 신들린 연출 기법과 함께 모든 걸 헛웃음으로 바꿔버린다. 결과적으로 주연의 고군분투마저 묻혀버리게 만든 요소다.
한국 공포 영화가 또 한 건을 해버렸다
늘봄가든을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차라리 2000년대 저예산 공포 영화 시절로 돌아가서 뭐라도 막 찍어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이었는지 알겠다. 늘봄가든이 딱 그 시절의 공포 영화다. 분위기만 잡다가 비명조차 시원하게 지르지 않는 그런 영화.
10대들의 흥미를 자극해서 마케팅으로 낚시하는 영화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배신감이 상당히 오래 남았다. 믿은 적도 없지만 이건 진짜 너무하다 싶었다. 좋은 기회를 내다 차버린 기획이 어이없고, 한국 공포 영화가 또 한 건을 해버렸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다.
결론 및 최종 평점
좋은 소재, 나쁜 연출, 최악의 각본. 메시지도 공포도 하나 남기지 못한 한국 공포 영화의 흑역사.
평점: 1.2 / 5.0
- 추천하는 분: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 공포 영화를 응원하는 분, 늘봄가든이라는 흉가 자체가 궁금해서 배경이라도 보고 싶은 분
- 비추천하는 분: 제대로 된 공포와 긴장감을 원하는 분, 3대 흉가 마케팅을 믿고 기대를 가진 분, 연출과 각본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모든 분 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