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넘치는데, 그 익숙한 맛이었다
1999년 세기말, 거제의 치어리딩 동아리 이야기. 소재만 들으면 설렌다. 그 시절 노래, 그 시절 감성,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응원전. 실제로 영화를 보면 에너지 넘쳐흐르고 소녀 우정 가득한 분위기는 분명히 느껴진다.
근데 그게 다 모두가 아는 그 맛이었다. 루즈하고 오글거리는, 클리셰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 안전빵의 영화. 뒤늦게 할리우드 하이틴 열풍을 따라한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계속 들었고, 치어리더 영화의 대표격인 '브링잇온'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으쌰으쌰 파이팅 넘치는 응원 자체는 보기 좋았지만, 그 많은 캐릭터들의 케미가 따로 노는 느낌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갔다.
영화 빅토리(2024) 기본 정보
- 감독: 박범수
- 장르: 드라마, 뮤지컬, 워맨스, 코미디, 학원
- 출연: 이혜리, 박세완, 이정하, 조아람 외
- 개봉일: 2024년 8월 14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120분
- 제작비: 83억 원
1999년 세기말, 거제의 댄스 콤비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댄스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전학 온 치어리더 세현(조아람)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9명의 멤버가 모여 얼렁뚱땅 탄생한 밀레니엄 걸즈. 만년 꼴찌 거제상고 축구부를 우승으로 이끌어야 하는 목표 아래, 춤과 음악으로 뜨거운 응원전을 펼치는 이야기다.
등장인물 — 새로운 얼굴은 반가운데, 케미가 살지 않는다
추필선 (이혜리)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우연히 치어리딩에 눈을 뜨게 된 춤생춤사 고등학생 역할인데, 솔직히 말하면 춤을 잘 춘다는 것 말고는 캐릭터의 매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혜리가 연기한 필선이라는 걸 강조하듯 급물살을 타는 하이라이트 구간이 있는데, 그 흐름을 보면서 치어리딩 자체는 그냥 단합을 위해 어쩌다 사용된 소재일 뿐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장미나 (박세완)
필선의 단짝이자 미나반점 7자매 중 장녀. 박세완의 안정감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캐릭터다. 혜리를 선두로 했을 때 그 옆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잘 해냈다.
김세현 (조아람)
서울에서 치어리더로 활동하다 거제로 전학 온 후 밀레니엄 걸즈의 핵심 멤버가 된 인물. 치어리딩 유경험자로서 동아리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조아람의 연기 역시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윤치형 (이정하)
필선과 어린 시절부터 단짝인 인물로, 축구부 골키퍼로 활약한다. 차라리 이정하 캐릭터만 좀 더 집중해서 다뤘다면 이야기가 더 극적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밀레니엄 걸즈의 나머지 멤버들
배소희, 정순정, 권용순, 염상미, 고유리, 방지혜까지 개성 있는 설정을 가진 멤버들이 많다. 새로운 페이스들을 많이 만나본 건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활약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캐릭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돈이 안 되어 있는 느낌이 강했다.
좋았던 점들
99년 세기말 감성을 자극하는 디테일
거창하게 보여준 건 없지만, 추억의 노래나 흘러가듯 나오는 대사들로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이 의외로 감칠맛이 났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디테일이 반갑게 다가온다. 음악 저작권료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시절 노래들을 충실하게 활용한 점은 인정할 만하다.
박세완과 조아람의 안정감 있는 연기
혜리를 선두로 했을 때 그 옆을 받쳐주는 박세완과 조아람의 연기가 돋보였다. 신인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영화인데, 이 두 배우의 안정감이 영화 전체의 균형을 어느 정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으쌰으쌰 응원 자체의 에너지
치어리딩이라는 소재가 주는 단합과 응원의 에너지 자체는 보기 좋았다. 모두가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들에서 느껴지는 긍정의 힘은 분명히 전달된다. 해피 바이러스를 찾는 분위기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이 부분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신인 배우들과의 만남
밀레니엄 걸즈 멤버들을 비롯해 새로운 페이스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는 점 자체는 반가운 경험이었다. 캐릭터 각각에 특징을 부여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신인 배우들이 고생하고 화기애애하게 작업했다는 느낌도 영화 곳곳에서 묻어난다.
아쉬웠던 점들
많은 캐릭터들의 케미가 따로 논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9명의 멤버로 구성된 밀레니엄 걸즈인데, 그 많은 캐릭터들의 케미가 하나로 잘 묶이지 못한다. 여자들의 우정을 담은 대표 히트작 '써니'가 되고 싶어했던 것 같지만, 그만한 우정의 케미가 잘 살았는지는 의문이다. 케미가 중요한 영화에서 케미가 느껴지지 않으니 답이 없다.
단합 과정 없이 큰 그림만 내다본 전개
너무 유치찬란하고 긍정으로만 밀고 가는데, 정작 단합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그려지지 않는다. 결말이 예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위기가 찾아와도 감정적으로 이입이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큰 그림만 보고 그 사이의 과정을 채우지 못한 느낌이 계속 든다.
어두운 이야기를 응원단 소재에 결합시킨 방식이 납득 안 된다
영화 안에 의외로 어두운 이야기가 꽤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게 제대로 다뤄졌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특히 그 어두운 이야기를 응원단이라는 밝은 소재와 결합시킨 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보는 중간에 내가 지금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치어리딩 자체의 재미가 부족하다
치어리딩이 영화의 핵심 소재인데, 정작 치어리딩에 대한 재미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배우들이 고생하고 화기애애하게 작업한 분위기는 알겠지만, 영화적으로 봤을 때 각본이 너무 밍밍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고증과 캐릭터 설정의 디테일이 아쉽다
서울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그 시절 서울에 대한 고증이 충분히 신경 쓰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축구부 포지션별 캐릭터들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차라리 이정하 캐릭터에만 집중했다면 이야기가 좀 더 극적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 영화
빅토리는 긍정의 힘을 열심히 전달하려는 영화다. 그 점에서는 분명히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긍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동시에 알려준 영화였다.
새로운 신인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즐거운 경험이지만, 결국 이 영화가 관객에게 남긴 메시지는 '혜리를 기억하세요'였던 것 같다. 그 많은 캐릭터들을 제대로 활용했다고 보기엔 아쉬움이 크고, 신인 배우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영화라는 점이 많이 실망스러웠다.
결론 및 최종 평점
99년 세기말 감성과 응원의 에너지는 좋았지만, 캐릭터 케미와 각본이 밍밍했던 안전빵 영화.
평점: 2.4 / 5.0
- 추천하는 분: 99년 세기말 감성과 그 시절 노래가 그리운 분, 가볍게 긍정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은 분, 신인 배우들의 활약을 보고 싶은 분
- 비추천하는 분: 캐릭터 간 케미와 단합 서사가 탄탄한 영화를 기대하는 분, '브링잇온' 같은 본격 치어리딩 영화를 기대하는 분, 밝은 소재와 어두운 서사의 균형을 중시하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