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이.씨(2008) 후기 — 쓸데없는 속편 말고 이 원조 영화를 꼭 한 번은 보시길

영화 알.이.씨(2008) 후기

넷플릭스에서 다시 봤는데, 여전히 재밌는 영화였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길래 오랜만에 다시 봤다. 러닝타임이 진짜 짧은 영화라서 가볍게 틀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재밌었다. 이 영화가 나온 게 2008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새삼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원조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라고 볼 수 있는 영화다. 촬영 현장을 담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전달되는 1인칭 형식의 좀비 영화. 쓸데없이 세계관을 입혀가며 만들어진 속편들 말고, 이 원조 영화만큼은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한다. 많은 좀비 영화들이 흔해진 지금까지도 이 시기 알이씨만큼 만족감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영화가 나오질 않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영화였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영화 알.이.씨(2008) 기본 정보

  • 감독: 하우메 발라게로, 파코 플라자
  • 장르: 공포
  • 출연: 마누엘라 벨라스코, 파블로 로쏘, 하비에르 보텟 외
  • 개봉일: 2008년 7월 10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78분

리얼 TV 다큐 프로그램의 리포터 안젤라와 카메라맨 파블로는 소방서 촬영을 위해 출동한 현장에서 기이하게 변해가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건물의 모든 출입문은 당국의 폐쇄 조치로 봉쇄된 상태. 원인도 모른 채 건물 안에 갇힌 채 무언가에 전염된 듯 사람들이 하나둘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카메라는 계속해서 돌아간다.

등장인물 — 극한직업 카메라맨과 답답한 여주인공

안젤라 (마누엘라 벨라스코)

리포터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다. 공포 상황 속에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을 반복하는데, 처음 봤을 때 그 답답함이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 답답함 자체가 오히려 이 영화의 리얼함을 살리는 요소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저럴 수 있겠다는 납득이 뒤늦게 온다.

파블로 (파블로 로쏘)

카메라맨이자 이 영화의 시선이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가장 극한직업을 소화하는 인물이다. 좀비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계속 들고 촬영을 이어가는 설정인데, 그 카메라를 통해 전달되는 1인칭 시점이 이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건물 주민들과 소방관들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 하나하나가 공포 속에서 변해가는 과정이 카메라에 담긴다. 저예산이라 최대한 가성비로 뽑힌 느낌이지만,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의 연기를 보여준다.

좋았던 점들

78분 안에 쫀득하게 담아낸 좀비 공포

러닝타임이 짧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초반에 페이크 형식의 좀비 영화라는 걸 납득하는 시간 말고는 말 그대로 휘몰아치는 전개 속도를 가진다. 짧은 시간 안에 충분한 좀비 공포를 느낄 수 있고, 그 쫀득한 밀도가 지금 다시 봐도 살아있다. 긴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달려드는 방식이 이 장르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게 확실하다.

1인칭 카메라 형식이 만들어낸 리얼함과 긴장감

화면이 어지럽고 복잡하기 때문에 오히려 긴장감이 살아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전달되는 1인칭 시점이 한정된 공간 안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실제 제작 국가에 같은 방식의 방송이 있어서 리얼함이 더 생생하게 살아났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그 리얼함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2000년대 후반에 나온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이 연출 방식은 정말 여전히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저예산으로 뽑아낸 가성비 공포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다는 게 느껴지지만, 그 한계 안에서 최대한 리얼함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좀비 습격 장면들도 적나라한 듯하면서도 저예산의 흔적이 있는데, 오히려 그게 가짜 같지 않은 현장감으로 이어진다. 돈을 쏟아부은 영화들이 만들어내지 못한 공포를 저예산으로 해낸 케이스다.

빠르게 뛰어다니는 좀비라는 아이디어

느릿느릿 걸어오는 좀비와 달리 빠르게 뛰어다니는 좀비가 주는 공포의 질감이 다르다. 이 영화가 그런 방향의 좀비를 보여준 케이스 중 하나인데, 지금 다시 봐도 그 긴박함이 살아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존재라는 설정이 이 영화의 공포를 제대로 완성시키는 요소였다.

아쉬웠던 점들

여주인공이 상당히 답답하게 느껴진다

리얼함을 살리기 위한 설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안젤라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답답함은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크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공포 상황에서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들이 있고, 그 답답함이 몰입을 방해하는 구간이 생긴다. 리얼함과 답답함 사이의 균형이 좀 더 잡혔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엔딩 하이라이트 부분의 작위성

엔딩 하이라이트 부분이 일반 상업 공포 영화의 흔한 톤을 가지면서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 과정까지의 밀도에 비해 결말의 연출이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다른 영화를 오마주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영화가 선택한 엔딩 방식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앞의 쫀득한 전개에 비해 조금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배우들의 동선이 보이는 구간들

이제 와서 다시 보니 배우들이 알아서 이 자리로 이동하는 느낌이 보이는 구간들이 있다. 제작 당시에는 충분히 자연스러웠겠지만, 지금 눈에 익숙해진 시점에서 보면 연출의 흔적이 살짝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2000년대 후반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아쉬움이다.

시리즈화가 되면서 원조의 명성이 희석됐다

이 영화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만, 뇌절 시리즈가 되어버린 속편들 탓에 원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게 아쉽다. 2편까지는 같은 배경으로 진행되어서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3편과 4편은 사실상 번외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다. 쓸데없이 세계관을 입혀가며 돈을 벌어보겠다고 만들어진 속편들이 원조의 가치를 희석시킨 셈이다.

속편 뇌절 전, 이 원조 영화만큼은 꼭 한 번 보시길

알이씨는 다시 봐도 여전히 재밌는 영화였다. 7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1인칭 카메라 형식, 한정된 공간 안의 좀비 공포.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밀도는 지금 봐도 손색이 없다.

속편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2편까지는 같은 배경이라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3편, 4편은 패스를 추천한다. 그리고 리메이크 영화보다도 이 원조 영화를 먼저 보는 게 맞다. 지금 이 시점에서 좀비 영화가 흔해졌지만, 결국 이 시기의 알이씨만큼 만족감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영화가 나오질 않는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치를 말해준다. 리메이크 영화 리뷰를 적을 때 꼭 다시 언급하겠다고 하고 미뤄왔던 알이씨 리뷰를 드디어 남겨보았다.

결론 및 최종 평점

78분 안에 쫀득하게 담아낸 원조 1인칭 좀비 공포. 속편 뇌절 전 이 영화만큼은 여전히 레전드다.

평점: 3.8 / 5.0

  • 추천하는 분: 짧고 강렬한 공포 영화를 찾는 분,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분, 저예산으로 리얼함을 제대로 살린 영화가 궁금한 분
  • 비추천하는 분: 어지러운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 방식이 불편한 분, 답답한 여주인공 캐릭터에 민감한 분, 깔끔하고 안정적인 화면의 공포 영화를 선호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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