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연기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뭘 봤는지 모르게 끝나는 영화
복수극이긴 한데, 일반적으로 생각할 만한 그런 복수극은 아니었다. 예고편을 기가 막히게 잘 뽑았다고 해야 할까. 속은 기분은 아닌데 속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은 그런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들에게 의존하는 스타일이었고, 믿고 보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멱살 잡고 하드캐리하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배우들의 연기 하나만으로 그래도 집중했다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내가 뭘 봤는지 모르겠다는 영화다. 결말을 향해 갈수록 무게감과 분위기가 서서히 깨져가는 걸 보면서, 이 영화가 어떤 서사를 보여주려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영화 리볼버(2024) 기본 정보
- 감독: 오승욱
- 장르: 범죄, 액션, 스릴러, 느와르, 블랙 코미디
- 출연: 전도연, 지창욱, 임지연, 이정재, 정재영 외
- 개봉일: 2024년 8월 7일 (대한민국)
- 상영 시간: 114분
- 제작비: 80억 원
대가를 약속받고 혐의를 뒤집어쓴 채 징역을 감수했던 전직 형사 수영(전도연). 2년 후 출소하던 날, 기다리는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임지연)뿐이었다. 일이 잘못됐다고 직감한 수영은 보상을 약속했던 앤디(지창욱)를 찾아 나서고,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등장인물 — 배우들이 소화를 잘한 거지,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진 않았다
하수영 (전도연)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복수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전도연이라는 배우 덕분에 무게감으로 이어지는 장면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인물 자체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깊게 들어가지 않는 사연, 아파트와 돈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설정이 있긴 한데, 주변 인물 모두가 미리 짜여둔 복수판에 난입하는 수준으로 등장하다 보니 수영이라는 캐릭터의 복수에 감정적으로 이입하기가 어려웠다.
앤디 (지창욱)
대형 투자회사 이스턴 프라미스의 이사이자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이다. 수영에게 대가를 약속했다가 배신하는 인물인데, 지창욱이라는 배우가 분위기로 버티는 구간이 많다. 빌런으로서의 위협감이나 캐릭터의 내면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채 역할을 소화하는 느낌이었다.
정윤선 (임지연)
조력자인지 적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영에게 협조한다. 이 모호한 포지션이 흥미로운 요소가 될 수 있었는데, 캐릭터의 배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그 흥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특별출연진 (이정재, 정재영)
특별출연 분량 자체는 좋았다. 이정재와 정재영의 등장은 반가운 요소였고, 그 장면들에서 나름의 존재감이 있었다. 다만 그 좋은 반가움이 영화 전체의 서사를 살려주지는 못했다.
좋았던 점들
배우들의 연기 하나는 확실히 건졌다
이 영화에서 칭찬할 만한 부분이 배우들의 연기 말고는 없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그 연기만큼은 확실히 좋았다.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무게감으로 이어가는 장면들, 지창욱의 분위기, 임지연의 포지션 소화까지. 배우들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이 영화를 그나마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별출연진이 주는 반가움
이정재와 정재영의 특별출연 분량은 영화 안에서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데 나름 성공했다. 주연 배우들의 하드캐리에 이 특별출연진의 등장이 더해지면서, 그 순간만큼은 영화를 보는 이유가 생기는 구간이었다.
예고편이 기대감을 만들어낸 방식
속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는 했지만, 예고편 자체는 잘 만들어졌다. 배우들의 연기와 분위기를 잘 담아내서 기대감을 충분히 만들어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예고편 마케팅이 이 영화의 가장 잘된 부분이었다는 게 아이러니이긴 하다.
아쉬웠던 점들
서사가 속이 텅 빈 느낌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다 보면 그나마 넘어가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보면 서사가 정말 단순하고 텅 빈 느낌이다. 주변에 나타나는 여러 인물 모두가 깊게 설명되지 않은 채 복수판에 난입하는 수준으로 등장하고, 복수의 이유나 배경도 충분히 쌓이지 않는다.
결말로 갈수록 분위기가 무너진다
초반부에 쌓아오던 분위기가 중후반부로 갈수록 가볍게만 보이는 코미디성 대사들과 상황들 때문에 박살 난다. 의도한 블랙 코미디적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택이 그나마 쌓아오던 무게감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분위기와 웃음 사이의 균형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는 게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캐릭터들의 배경이 너무 얕다
각 캐릭터들이 심상치 않긴 한데, 대부분 분위기로 먹고 가는 수준이다. 배우들이 소화를 잘한 거지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인 복수극의 인물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수영이라는 인물의 사연도, 앤디라는 빌런의 내면도, 윤선이라는 모호한 인물의 배경도 모두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15세 관람가의 복수극이라는 한계
15세 관람가 복수 서사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강렬한 복수의 쾌감이나 긴장감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 부분에 대한 기대치를 다르게 잡고 봐야 하는 영화인데, 예고편에서 심어준 기대감과 실제 관람 경험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는 원인 중 하나다.
전체 흐름이 대중적인 오락 영화로 보기엔 힘들다
여름 극장가를 겨냥한 오락 영화로서의 포지션을 가졌는데, 실제 영화는 그 포지션에 맞지 않는다. 대중적인 재미를 기대하기엔 서사가 너무 실험적인 구석이 있고, 그렇다고 완전히 예술 영화처럼 깊은 메시지를 주지도 않는다. 안전빵인 것 같으면서도 실험적인, 이 어중간한 포지션이 끝내 밍밍한 인상으로 남는다.
알쏭달쏭했던 영화, 배우들이 없었다면 세상 지루했을 뻔했다
리볼버를 보면서 계속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다. 진짜 이런 영화를 기대한 게 아닌데 라는 생각과, 배우들 연기가 너무 좋으니까 또 그거에 푹 빠져서 보게 되는 알쏭달쏭한 감각. 배우들의 열연 쇼에 심취하지 못했다면 세상 지루했을 영화가 됐을 뻔했다는 게 솔직한 평가다.
기대가 컸기에 아쉬움도 컸다.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이름이 붙은 영화에 거는 기대치가 있는 만큼, 그 기대에 서사가 따라가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도 크게 다가온다. 잘라낸 장면들이 많은 건지 하는 의문도 들 정도로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은 구간들이 있었다. 칭찬할 만한 부분이 배우들 연기뿐이라는 게 슬픈 영화지만, 그 연기 하나는 확실히 건진 영화였다.
결론 및 최종 평점
배우들은 확실히 건졌지만, 서사가 텅 비어있고 결말로 갈수록 분위기가 깨지는 복수극.
평점: 2.8 / 5.0
- 추천하는 분: 전도연의 연기를 좋아하는 분, 배우들의 분위기와 존재감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분, 느와르 분위기의 한국 영화를 찾는 분
- 비추천하는 분: 강렬한 복수 서사와 쾌감 있는 결말을 기대하는 분, 예고편 보고 정통 복수 액션을 기대한 분, 탄탄한 캐릭터 배경과 개연성을 중시하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