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가족에게 들었던 말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을 때는 금방 넘겼는데, 가족에게 들었던 한마디는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 반복해서 들었던 평가나 자신에게 중요한 순간에 들었던 말은 성인이 된 뒤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떠오를 수 있습니다. 시험이나 새로운 일을 앞두고 “너는 원래 못하잖아”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면, 시간이 지나도 무언가를 시작할 때 스스로를 먼저 의심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성격이나 삶을 그대로 결정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이후의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다만 가족은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들의 평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에 영향을 주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래 남은 말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가족이 한 말이라 더 아팠다”에서 끝내기보다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반복되었고 지금의 자기평가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평가는 자신을 보는 기준이 되기 쉽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능력이나 성격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부모나 형제자매처럼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가족에게
“너는 원래 그림을 잘 못 그리잖아.”
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해봅시다.
한 번의 말이라면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평가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 번의 말과 반복된 평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특정 상황에서 한 번 들은 지적과 오랫동안 같은 평가를 들어온 경험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그 평가가 맞는지 다른 경험을 통해 확인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 실제 능력이 달라졌는데도 새로운 일을 앞두고 “나는 원래 이런 걸 못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순간에 들은 말은 더 선명하게 남을 수 있다
모든 가족의 말이 같은 강도로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을 앞두고 있었거나,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던 순간처럼 자신에게 중요한 상황에서 들었던 말은 더 크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려는 사람에게 가족이
“네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어?”
라고 말했다고 해봅시다.
말 자체는 짧지만 당시 내가 가장 불안해하던 부분을 건드렸다면 오래 기억될 수 있습니다.
몇 년 뒤 새로운 도전을 앞두었을 때 같은 말이 떠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과거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비슷하게 느껴지면서 당시의 감정까지 함께 떠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었고 무엇을 인정받고 싶었는지 살펴보는 편이 더 도움이 됩니다.
반복해서 들은 평가는 내 생각처럼 느껴질 수 있다
가족에게 반복해서 들었던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가족의 말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너는 너무 소심해.”
“넌 항상 실수해.”
“넌 이런 걸 못해.”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면, 성인이 된 뒤에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비슷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는 원래 사람을 잘 못 만나.”
라고 생각하거나, 새로운 업무를 맡기 전에
“나는 이런 건 원래 못해.”
라고 먼저 결론을 내리는 식입니다.
이럴 때는 현재의 자기평가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과거에 반복해서 들었던 표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 구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특정 행동에 대한 평가와 사람 전체에 대한 평가는 다릅니다.
“이번 발표에서는 준비가 부족했어”라는 말은 특정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반면 “너는 원래 발표를 못해”라는 말은 한 번의 행동을 사람 전체의 능력처럼 확대합니다.
과거에 들었던 말을 다시 볼 때 이 둘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자신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상처가 지금의 선택에도 영향을 주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가족에게 들었던 말이 오래 기억된다고 해서 모두 현재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실제 행동은 이미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얼마나 선명한지보다 그 말이 지금의 선택과 자기평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에게 “너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현재 중요한 발표 기회를 계속 피하고, 실제 준비를 하기 전부터 “나는 어차피 못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과거의 평가가 지금의 행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면, 과거의 평가가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 그 말이 자주 떠오르는가?
- 무언가를 해보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먼저 낮게 평가하는가?
- 실제로 잘한 경험이 있어도 과거의 평가를 더 믿고 있는가?
- 그 말을 이유로 피하고 있는 선택이나 행동이 있는가?
-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평가가 서로 다른데도 생각을 바꾸기 어려운가?
이런 질문은 과거의 말이 단순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현재의 자기평가까지 움직이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평가와 현재의 경험을 따로 놓고 볼 수 있다
오래된 말을 억지로 잊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그 말이 지금도 사실인지 현재의 경험을 기준으로 다시 확인해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잘 설명하지 못해.”
라는 생각이 있다면 최근의 경험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회의에서 의견을 전달했던 경험, 친구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던 경험, 이전보다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된 상황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직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나는 원래 못한다”고 결론 내리기보다 어떤 상황에서 특히 어려운지를 구체적으로 보는 것이 낫습니다.
“나는 원래 못해”와 “나는 많은 사람 앞에서 즉흥적으로 말할 때 어려움을 느껴”는 전혀 다른 자기평가입니다.
후자는 현재 상황을 훨씬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무엇을 연습하거나 바꿀 수 있는지도 찾기 쉽습니다.
가족과 이야기한다면 과거의 잘잘못보다 현재의 영향을 말할 수 있다
가족에게 들었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면 그 문제를 가족과 이야기하고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오래전 누가 옳고 그르렀는지를 따지는 방식으로 시작하면 서로 기억이 달라 대화가 쉽게 막힐 수 있습니다.
대신 그 말이 지금 나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내가 무언가를 못한다고 자주 이야기했던 게 지금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생각나.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단정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과거의 사건을 다시 판결하는 것보다 현재 관계에서 어떤 말과 방식이 나에게 부담이 되는지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둘 수 있습니다.
물론 가족이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내가 느낀 의미와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대화를 했다고 반드시 원하는 반응이나 사과가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과거를 인정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지금 어떤 말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어떤 방식의 대화를 원하는지 자신의 기준을 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과거의 말이 지금의 나를 그대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에게 들은 말이 오래 상처로 남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들은 평가였을 수도 있고, 자신에게 중요한 순간에 들은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이 현재의 자기평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들었던 평가가 지금의 나를 그대로 설명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순간도 생깁니다. 예전에는 어려웠던 일을 지금은 잘할 수도 있고, 가족이 알고 있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남은 말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그 말이 현재에도 사실인지, 아니면 과거에 만들어진 평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를 구분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과거의 목소리와 지금까지 직접 쌓아온 경험을 따로 놓고 볼 수 있을수록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