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인데도 자신의 감정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크게 표현하지 않고, 속상한 일이 생겨도 괜찮다는 말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보면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나는 감정을 대화로 풀어가는 편인데 상대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서로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릅니다. 말로 마음을 자세히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행동이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표현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단정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감정을 다루고 전달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같은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감정을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감정을 이야기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괜히 이야기했다가 싸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에 있는 말을 꺼내기보다 혼자 정리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감정을 표현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보다 필요한 일을 챙겨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가 표현을 잘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무조건 무관심하거나 사랑이 부족하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표현이 적은 사람에게 계속 대답을 재촉하면 더 닫힐 수 있다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과 대화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상대의 반응이 느리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생각이야?"라고 물었는데 상대가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왜 말을 안 해?"라고 재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런 압박을 받을수록 오히려 말을 더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질문의 방식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생각해보고 나중에 이야기해줘."
라고 말하면 상대가 대화를 피해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 덜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때 말만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가 평소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지, 힘든 일이 있을 때 챙겨주는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지 등 행동에서도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 "보고 싶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내가 아플 때 필요한 것을 챙겨주거나 중요한 일정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나름의 방식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행동이 항상 말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는 애정 표현을 말로 듣는 것이 중요한데 상대가 행동만으로 표현한다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상대의 방식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어떤 표현을 필요로 하는지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그대로 두면 서운함이 쌓일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서로의 차이를 모른 채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할 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애정 표현을 듣고 싶어 하는데 다른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충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나를 좋아한다면서 왜 그런 말을 한 번도 안 해?"
라고 생각하고,
다른 쪽에서는
"매일 같이 있고 필요한 것도 챙겨주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도 서로가 기대하는 표현 방식이 다르면 서운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누가 맞는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어떤 행동이 애정으로 느껴지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말해보기
"좀 더 잘해줬으면 좋겠어."
라는 말은 상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대신
"나는 가끔 네가 먼저 오늘 어땠는지 물어봐주면 관심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처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도 막연하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대신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면 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에게도 어떤 표현이 편한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어떻게 해줄 때 제일 편하고 좋아?"
이런 대화를 통해 서로의 표현 방식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을 표현하도록 강요하기보다 작은 대화부터 시작한다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에게 갑자기 깊은 이야기를 요구하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나에 대한 네 감정을 전부 말해봐"라고 하기보다 일상적인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가장 피곤했던 일은 뭐였어?"
"오늘 기분 좋았던 일은 있었어?"
"내가 아까 한 말이 불편하지는 않았어?"
처럼 비교적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경험이 조금씩 쌓일 수 있습니다.
또 상대가 어렵게 마음을 이야기했을 때 바로 판단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대가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는데
"그걸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건 별일 아니잖아."
라는 반응을 들으면 다음에는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느꼈구나."
라고 먼저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표현의 차이와 기본적인 배려를 구분해야 한다
감정 표현이 서툰 것과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를 시도하고, 약속이나 기본적인 배려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표현 방식의 차이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반대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감정을 계속 무시하거나, 대화를 전혀 하지 않으려 하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방적으로 회피한다면 다른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쪽이 계속 상대의 침묵을 이해해주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표현이 서툰 사람도 관계를 위해 조금씩 소통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고, 상대방 역시 자신의 방식만을 정답으로 요구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현실적인 약속을 만들어보기
감정 표현의 차이는 한 번의 대화로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을 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갈등이 생겼을 때 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오늘 안에는 다시 이야기할게."
라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반대로 상대가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로의 근황이나 관계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성향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관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 서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과정에서는 상대의 침묵을 무조건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말이 적은 이유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표현에 익숙하지 않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표현 방식만 이해해주다가 자신의 감정을 계속 참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애정 표현이나 대화 방식이 있다면 상대가 알아서 눈치채기를 기다리기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편이 좋습니다.
관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맞춰가는 과정입니다. 한 사람은 더 많이 표현하고 다른 사람은 조금 천천히 이야기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조금씩 조정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얼마나 많이 표현하느냐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는가에 가깝습니다. 말이 서툰 사람에게 조금 기다릴 공간을 주면서도 필요한 것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가 어렵게 꺼낸 마음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 이런 작은 경험이 쌓이면 표현 방식이 다른 두 사람도 자신들에게 맞는 관계의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